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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의 한 축 '동교동' 40년, 역사속으로

<8뉴스>

<앵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던 동교동은 단순한 지명이 아닌 민주화 투쟁의 거점이자, 계보 정치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교동 40년의 역사를 허윤석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동교동'이란 단어가 한국 정치사에 등장한 것은 서슬퍼런 유신 정권 시절인 지난 1973년입니다.

당시 언론들이 신인 정치인 때부터 동교동에 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명을 쓰지 못하고, '동교동계 인사'로 칭하면서 부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곳에서 6년 반 동안 쉰다섯 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나가는 건 안되지만, 들어오는 건 된다고 말했단 말이에요.]

사실상 감옥살이에 가까운 철저한 감시와 탄압이 이뤄졌습니다.

[당시 가택연금 담당자 : 그때 당시 김대중 총재는 감시 1호였습니다. 바로 저 집이 10년 동안 제가 감시했던 집인데,  당시 음식물도 반입을 금지했었습니다.]

권노갑, 김옥두, 한화갑 전 의원 등 이른바 가신 그룹이 동교동 자택에서 살다시피 하며, 독재 정권에 맞서면서 동교동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는 상도동과 함께 민주화 투쟁의 양대 거점이 됐습니다.

[한광옥/전 의원 : 민주화 운동을 했던 많은 동지들이 그와같은 인연을 해서 모인 곳이 동교동의 모임이 아닌가….]

지난 8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정치적 부활을 꿈꾸며 돌아 온 곳도 동교동이었습니다.

87년,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부분 국회에 입성하면서, '보스 정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던 동교동.

92년, 김 전 대통령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위기도 찾아옵니다.

[설훈/전 의원 : 대통령 선거에 패해하고 난 뒤였습니다. 정치은퇴 선언을 작성하시고 그걸 그 다음날 아침에 발표를 하셨죠. 그 때 사실은 난 이제 다했다.]

그러나, 지난 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동교동계 인사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측근 정치의 폐해'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조차 지난 2003년 퇴임 직전 동교동계란 표현을 쓰지 말라며 해체를 지시했습니다.

결국 동교동은 동교동계 인사들의 쇠락에 이어, 김 전 대통령마저 서거하면서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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