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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성 재판 ① - 뇌물을 줄 이유가 있었을까?

[취재파일] 삼성 재판 ① - 뇌물을 줄 이유가 있었을까?
<공방기일로 정리하는 삼성 재판 ①>

● 삼성에게 뇌물을 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지난 7일에는 삼성 뇌물 사건 1심 재판의 결심공판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12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 각각 징역 10년, 황성수 전 전무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어 결심공판 절차인 변호인 최종변론과 피고인 최후진술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주요사건 재판에 비해 삼성 뇌물 사건의 결심공판은 비교적 일찍 마무리됐습니다. 특검이 최후논고와 구형에 30분 정도를 썼고, 변호인단도 최종변론을 1시간 내에 끝냈습니다. 피고인 5명의 최후진술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블랙리스트 재판의 1심 결심공판이 오전부터 시작돼 저녁 8시를 넘겨 마무리된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결심공판 직전 열린 공방기일 덕입니다. 재판부는 4일 목요일과 5일 금요일 이틀에 걸쳐 공방기일을 열었습니다. 공방기일이란 법률상 용어는 아니지만, 사건의 쟁점들과 재판부가 특별히 궁금해 하는 것들, 재판부가 법리적 판단을 할 때 의견을 참고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알려주고, 이에 대해 양측에서 의견을 준비해 와 토론 방식으로 상호 주장하는 절차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부회장을 끝으로 피고인신문까지 마무리한 뒤 지금까지 재판에 나왔던 모든 사실관계들을 바탕으로 특검과 변호인단이 건곤일척의 법리 대결을 미리 벌인 것입니다.

일부 판사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사 사건에서 종종 진행하기도 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평가를 떠나서, 재판 마지막에 각자가 작심하고 준비해 온 논리들인 만큼, 가장 정제된 주장들이 펼쳐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나왔던 주장들을 삼성 뇌물 사건 1심 선고 전까지 매일 주제 별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우선 첫 번째 순서로 <삼성에게 뇌물을 줘야 할 정도로 중요한 현안이 있었는지>에 대해 양측의 주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삼성에게 뇌물을 줄 동기가 되는 사정, 즉 '현안'이 있고 없고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첫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기가 있어야 뇌물을 건넬 테니까요. 아무 이유도 없이 뇌물공여라는 불법행위를 저지르진 않지 않을까요? 이 때문에 특검은 삼성에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있다는 주장부터 시작합니다.

특검은 우선 승계 작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신(이재용 부회장)의 사적비용을 최소화하고, 지배력은 최대화 할 수 있는 지배구조로의 개편 작업"

그러면서 특검은 이런 승계 작업을 갑작스럽게 진행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평상시라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면 되는데 부랴부랴 서둘러야 할 일이 생겼고, 그러다 무리하게 된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그 사정은 바로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유고'입니다.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아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문제가 시급하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재용 삼성 전자 부회장
특검은 삼성이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준비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1. 삼성물산 합병
2.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
3.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


이 세 가지가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해 삼성이 해결해야 할 가장 직접적인 현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성사시키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게 특검의 판단입니다.

또, 이 부회장 승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에 나설 정도로 삼성에게 위기였던 '4. 메르스 사태' 역시 삼성의 추가 현안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현안들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도 주장합니다.

"삼성물산 합병 같은 경우에는 대통령 말씀자료, 공약,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 최훈 행정관의 보고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는 것은 언론 보도도 수차례 이루어졌고, 이 역시 대통령 공약과 관련돼 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 문제는 안 전 수석 수첩에 적혀 있으며, 메르스 사태 때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삼성병원장과 만나기도 했다."

반면 삼성 측은 특검이 주장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가공의 틀"이라고 일축합니다. 특검이 몇몇 사실을 조합해 있지도 않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뒤집어씌운다는 것입니다.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주주의 신뢰를 확보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 민정수석실 등에서 발견된) 청와대에서 추가로 나온 문건에도 이런 내용들이 나와 있다."

결과적으로 특검이 현안이라고 주장한 것들 가운데 실제 이뤄진 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의결권은 이른바 승계 작업을 모두 마쳤어도 변함이 없다. 중간지주회사 제도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처분해야 하는 주식의 양이 1천만 주에서 5백만 주로 바뀐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데, 삼성의 (당시) 입장은 ‘처분해야 할 주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삼성 입장에서 볼 때 성공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변호인단은 이처럼 애초에 뇌물을 줄 이유가 없었고, 전부 특검이 만든 '가공의 논리'라는 입장입니다. 줄 이유도 없는데 뇌물을 건넸을 리는 없고, 결국 삼성이 박 전 대통령 측에 건넨 것은 강요에 못 이겨서 낸 '지원금'일 뿐이라는 논리인 거죠.

하지만 양측은 뇌물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투면서 더 치열한 논리 대결을 펼칩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는 내일 취재파일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취재파일] 삼성 재판 ② - 제3자 뇌물의 관건, '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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