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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푸틴과 트럼프의 설전이 예고한 미래

[취재파일] 푸틴과 트럼프의 설전이 예고한 미래
지난 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방문제 연설에서 “전략 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와 관련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중국 당국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환구시보’가 중국의 핵 역량 강화를 주장하면서, 핵무기 강화 경쟁이라는 망령이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망령은 현실이 될까요?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국제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0년 새로운 전략무기협정(START)을 체결하며 가까워지는가 싶던 미-러 관계는 2012년 푸틴이 재집권하면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유럽으로 확장해 오는 미국의 군사력, 민주주의는 뒷전에 둔 푸틴의 통치 행태 등이 서로에게는 눈의 가시였죠. 2013년 7월, 러시아가 미국 정보당국의 민낯을 공개한 후 미국 검찰 수배를 받고 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승인한 것은 악화되고 있던 양국 관계 악화를 가속화시켰습니다. 이 일로 두 달 후로 예정됐던 미-러 정상회담은 취소됐죠.
러시아 푸틴 대통령
● 긴장 속의 미-러, 가까워진 중-러, 러시아에 다가가려는 트럼프

결정적인 일은 2014년 7월에 발생했습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한 겁니다. 21세기에 벌어진 20세기적 사건.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UN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도 잃은 게 컸습니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경제가 쪼그라든 거죠. 유가라도 높았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저유가로 기댈 곳이 사라졌습니다. 강한 러시아를 기치로 국방력 강화를 주장했던 푸틴 대통령이었지만, 올해 국방 예산을 5% 감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을 겁니다. 이때 손을 내민 곳이 중국이었습니다. 미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도 있었으니 두 국가는 급속하게 긴밀해집니다. 중국은 급격한 경제 발전 이후 미국에 동등한 대우를 해 달라, 즉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 재균형정책(Rebalancing) 등의 이름으로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중국으로서도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비슷한 상황에 놓인 러시아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주장했던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안 친러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미국 경제를 망치고 있는 주범으로 중국을 지목하며, 상계관세 등을 동원해 대 중국 무역 적자를 축소시키겠다고 역설했죠. 친러 발언은 오바마 때리기라는 대선 전략의 일환이었겠지만, 밀월 관계를 형성한 중국과 러시아의 사이를 벌리겠다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선 이후 친러 인사를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상징적인 메시지죠. 이런 가운데 앞서 소개한 푸틴과 트럼프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만으로는 미-러 양국 지도자의 설전이 현실화 될지를 가늠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양국의 국내 사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학자 로버트 퍼트남의 이야기처럼 대외 정책과 대내 정책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러시아는 2018년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푸틴으로서는  재집권을 위해 경제 개선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대러 경제 제재 해제 가능성을 시사한 트럼프의 등장은 러시아에게 희망의 메시지죠.

미국도 2018년에 중간 선거가 있습니다. 올해 미국 대선 결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국제 질서의 수호자,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보다는 당장 내 삶을 개선시켜주는 미국이라는 것을 말이죠. 의회 지지 기반이 약한 트럼프는 경제에서 조기에 성과를 내서 의회 내 자신의 세를 불리려 할 겁니다. 그걸 바탕으로 재선도 준비할 겁니다.

● 외치보다 내치가 중요해진 미국과 러시아

이렇게 대외적으로 미국과 러시아는 오바마 집권기보다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정치 일정상 외치보다는 내치가 중요해진 상태고, 내치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협조가 필요해진 상황이죠. 이런 걸 감안하면 미국과 러시아가 과거와 같은 핵 경쟁을 벌일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당선자는 자신의 트윗글이 논란이 되자 언론을 탓하며 발을 빼기도 했죠.

핵 경쟁이라는 망령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러시아 경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푸틴 대통령은 대선 전략으로 ‘애국주의’나 ‘반미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효과 극대화를 위해 실제로 핵전력 증강을 추진하고, 미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면 전 세계적 핵 경쟁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많은 전쟁 원인이 그러했듯 예상치 못한 이벤트의 발생이나 지도자의 즉흥적 결정이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의 등장은 이런 측면에서 불안 요소고, 러시아가 해킹을 통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낳을 파장도 예측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 상황이 과거와 같은 핵 경쟁으로 치닫는 걸 방지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2018년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판 ‘아랍의 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경제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죠.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국민 감정을 자극할 목적으로 핵 정책을 내 놓는다고 해도 과거처럼 돈이 많이 드는 핵무기 숫자 증가 정책 등을 사용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돈은 적게 들면서 국민 감정은 자극할 수 있고, 대외적 명분도 쌓을 수 있는 정책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외교의 시대 예고한 설전…대통령 부재의 한국

군비 경쟁은 한쪽의 군비 증강이 상대방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상대가 덩달아 군비를 증강시키는 일이 반복될 때 발생합니다. 누군가 먼저 칼을 빼 들고, 그것이 상대에게 위협적일 때 군비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핵무기 숫자를 증가시키는 정도의 정책이 아니라면 미국에게는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굳이 먼저 칼을 빼들 이유가 없는 상황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미-러 핵 경쟁이 현실화될 지, 대략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예측은 양국이 합리적 선택을 할 것이라는 가정 하의 추론입니다. 예측의 근거인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면도 있기 때문에 미-러 관계의 미래를 단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러가 과거와 같은 핵 경쟁을 벌일지 과도한 걱정을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는 해야겠지만요. 그런데 이번 미-러 양국 지도자의 설전과 그것의 배경이 분명히 예고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권력 교체기를 맞은 2017년은 불꽃 튀는 외교의 시대가 될 거라는 거죠.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 이후 미-러 관계가 개선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은 중국과 더욱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겁니다. 중국이 여기에 맞서면 우리나라의 대미, 대중 정책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러가 갈등을 이어간다면 어떨까요?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 관계가 더 깊어져 중국의 힘이 더 강화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중국은 더 과감하게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에 대해 압박해 올 겁니다. 중국을 압박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 했던 미국은 상대적으로 공략이 쉬운 우리나라를 타깃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할 수도 있죠. 일본은 이미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외교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 우리로서는 쉬운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은 그 자체로도 우리나라에게 큰 외교적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트럼트 당선자는 WTO와 UN으로 대표되는 국제경제 질서, 국제정치 질서에 반감을 표시해 왔습니다. 국제 질서의 새판짜기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죠. 트럼프 당선자가 국제기구의 효용성을 폄하하고 있는 만큼, 새판짜기는 다자적 회담보다는 양자적 담판으로 결정될 공산이 큰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담판에 나설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라 사실상 대통령 부재 상태입니다. 권한대행이 대신할 수 있을까요? 계약은 당사자와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외교는 계약이고, 국가 간 계약의 당사자는 대통령(국가정상)입니다. 권한을 대행할 뿐인 권한대행을 상대방이 계약의 당사자로 인정해 줄까요? 2017년은 우리나라에게 여러모로 험난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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