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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법원장 사찰'…법원은 순수한 피해자?

[취재파일] '대법원장 사찰'…법원은 순수한 피해자?
행정부, 엄밀히 말하면 국가정보원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사찰했다는 증언이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터져 나왔다. 장소도 시간도 의외인 곳에서 발언자 또한 의외의 인물이었다.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 조 전 사장은 2014년을 뒤흔든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해당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며 그 증거로 문건 하나를 제시했다.

문건에는 한 신문사가 대법원장이 일과시간에 등산을 간다는 보도를 준비하자 대법원이 해명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문건의 특성상 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 민정에 보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증언의 파장은 매우 컸다. 

발언 직후 여론이 들썩였고 법원행정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고 한 대법원에서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권 독립이 논란의 대상이 된 현재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 며 “헌법정신과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반헌법적 사태'”라고 밝혔다. 

국가정보기관이 사법부의 수장에 대해 사찰을 벌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용납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사태를 옹호할 생각 또한 추호도 없다. 수사를 통해서라도 책임자 등을 찾아 엄벌하고 재발방지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놓고 법원이 오로지 순수한 피해자라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난해 국정원 직원이 경력판사 지원자 가운데 임용 막바지에 이른 이들을 직접 만나 사실상의 면접을 보고 사상검증을 하고 다녔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당시 법원행정처는 기자에게 "신원조사는 법적 근거가 있어서 별 문제가 없고 국정원이 시행하는 신원조사 방법은 법원이 관여할 문제라 아니"라고 말했다. 행정처의 공식 확인라인에 있던 어떤 판사는  "저도 전화 받고 다 ..그렇게 들어왔는데요" 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기도 했다. "당신이 좀 오버하는 게 아니냐"는 뉘앙스였다.

취재결과 국정원의 경력판사 면접이 한 두해 된 일이 아니었는데도 법원행정처는 그 동안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임용이 된 일부 경력 판사들이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걸 보면 단순히 몰랐던 사안은 아닌 듯 싶다. 결국 보도가 나가고 얼마 뒤에야 법원행정처장은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은 채 내부 통신망에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말했듯이 법원은 국민들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최일선에서 재판을 벌이는 판사들을 상대로 국정원이  '생각을 사찰'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고 ‘적어도 외견상’ 판단한 바 있다. 그러던 법원이 갑자기 국정원이 대법원장의 일상을 지켜봤다고 '반헌법적' 운운하는 것은 사찰대상에 따라 판단을 달리 하겠다는 말인가. 물론 사람에 따라 두 경우의 경중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말한다면 오히려 전자가 더 엄중하고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국정원 입장에서 일선 판사들의 사상검증까지 사실상 용인한 법원을 두고 대법원장의 등산 취미 정도를 알아보는 것이 뭐가 그리 심각한 문제일까라고 생각했을 듯 싶다.

애초부터 이 취재파일은 쓰기가 저어됐다. 내용과 의미에 상관없이 국정원의 행동이 ‘물타기’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지금의 현실에서 '반헌법적' 사태를 역설하고 흥분하기 이전에 자신들이 그 동안 사법부의 자존심과 긍지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해왔는지, 과연 어디서부터 이런 상황이 시작된 것인지부터 진지하게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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