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로 탄핵 정국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정치는 생물이라던가. 상황은 날마다, 시시각각 변했다. 어제 한다고 했다가 내일은 안 한다고 하고, 모레는 또 한다고 했다. 수많은 ‘말’의 홍수가 급류가 되어 쉴 새 없이 흘러갔다.
탄핵도 처음에는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기자의 책상에는 지금 ‘대선주자들의 대통령 거취 해법’이라는 제목의 표가 붙어 있다. 지난달 중순쯤 한 신문에서 오려붙인 이 표에서 ‘탄핵 주장’으로 분류된 정치인은 12명 가운데 2명뿐이다. 불과 3주 전에 오린 표인데 그동안의 변화를 생각하면 마치 3년 전 같다.
기자가 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 9단’들도, 처음에는 “탄핵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유려한 논리와 자신만만한 태도를 기억한다.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촘촘한 논리와 정치 공학적인 전망에 기자는 경도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는 정치인이 전문가니까.
그리고 오늘이 왔다.
민심, 민심 하지만 제대로 민심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을 아직 많이 보지 못했다. 정치인이 말하는 민심만큼 공허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개는 ‘내가 믿고 싶은’ 민심, ‘나한테 유리한’ 민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민심’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없지 않다. 애초부터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민심은 어떻다’고 말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우월감이 기저에 깔린 지나친 단순화에, 일방적인 대상화라고 생각했다.
의회 민주주의라는 틀에 갇혀 광장의 정치를 낮춰보던 정치인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게 이번 정국이었다. 머뭇거리던 제도 정치의 멱살을 붙잡아 탄핵 열차에 올려 태운 건 국민의 힘이었다.
결국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언론이나 관료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답은 나와 있다. 전문가를 자처했던 정치도, 언론도 반성하고 또 배워야 한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힘을 대신 집행한다는 당연하다 못해 뻔한 구문을 되새길 때가 왔다. 그리고 다시는 잊지 말기를 바란다. 오늘이 바로 그 분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