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심복'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 전국시대에 통일을 앞둔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었습니다. '한'이 '진'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지리적 중요성을 '심장'과 '복부'로 설명했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엔 '운전기사'들이야말로 심복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고용주들과 함께 움직이고 그들의 사적인 대화까지 공유하면서도, 때로는 언론에 그들의 비리를 폭로해 앞길을 가로막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2일, 세계일보는 최순실 일가의 운전기사 김 모 씨와의 인터뷰를 공개했습니다. 최 씨 일가에서 1985년부터 2004년까지 17년 동안 운전기사로 일한 것으로 전해진 그의 증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김 씨는 "지난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당시 최씨 일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2억 5천만 원의 뭉칫돈을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최 씨와 그녀의 모친 임 씨와 함께 이 돈 가방을 싣고 박 대통령이 사는 대구의 한 아파트로 내려갔다고 말했습니다.
'연세대 관계자를 만났다'는 최순득 씨의 딸 장시호 씨의 연세대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한 증언뿐만 아니라, '전화 한 통에 라디오에서 원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등의 연예계 인맥과 관련한 증언들까지 나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운전기사의 폭로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3년 4월 이 전 총리에게 현금 3천만 원이 든 음료박스를 전달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던 상황에서,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가 둘의 만남을 기억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 전 총리는 이 일로 총리직에서 사퇴해야만 했습니다.
이외에도 2014년 박상은 전 새누리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2011년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구속된 부산저축은행 사건,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최규선 게이트 등의 대형사건에서도 운전기사의 폭로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결정적이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대기업 사주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이른바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시발점은 지난해 12월 있었던 몽고식품 사태였습니다. 몽고식품의 김만식 회장이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겁니다.
결국 그는 대중의 거센 비난을 받고 명예회장직에서 사퇴했고,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불매운동까지 이어지면서 매출은 반 토막이 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엔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이어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주행 중에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식의 부당한 지시 사항까지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어 7월에는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무려 A4용지 140여 장에 이르는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어기면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전직 운전기사의 진술이 나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습니다.
송 씨는 회사에 전화해 '몽고식품 사태처럼 폭로 방송이 나가면 회사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면서 '억대의 합의금을 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조사결과 송 씨의 주장이나 협박과 달리 회장이 범죄행위로 볼만한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재판에 남겨진 송 씨는 공갈미수 혐의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특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로 알려진 최영 씨가 그런 경우로 회자됩니다. 21년 동안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고,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도 직접 운전해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도 22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차를 운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 2015년 별세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운전기사도 40년을 가족처럼 함께했다고 하죠.
마치 '살아 있는 CCTV'와도 같은 운전기사의 눈. 운전기사가 어떤 심복이 될지 고민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획, 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