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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세먼지, 예보와 상관없이 서울 곳곳에서 최악 상황

-미세먼지, '이곳'을 피해라!

[취재파일] 미세먼지, 예보와 상관없이 서울 곳곳에서 최악 상황
요즘 아침에 날씨 예보와 함께 미세먼지 예보도 챙기는 분들 많으시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 미세먼지 예보가 과연 정확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미세먼지와 관련한 기획보도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습니다.

특히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의 “수도권 미세먼지의 41%는 디젤차가 주범”이라는 발표를 보고 나선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그 얘기는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이 도로를 24시간 활보하고 있다는 말인데, 발표가 사실이라면 거의 모든 생활공간이 도로와 접한 서울 도심은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정말 지금의 미세먼지 예보가 도로에 둘러싸인 우리의 생활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장소에서 측정해 발표되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은 현장에 해답이 있는 법.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미세먼지 예보가 ‘좋음’ 또는 ‘보통’인 날, 다시 말해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 야외활동을 하기 적절하다고 예보가 된 날 실제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야외 공간을 찾아 미세먼지를 측정해 보았습니다.

측정지역은 신촌 로터리, 광화문, 강남대로, 역삼역 등 차량 통행이 항상 많은 도로 인접 지역의 인도. 측정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예보상으론 미세먼지 농도가 안심해도 되는 날이라고 했지만 하나같이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수준으로 측정됐습니다.

환경전문가들은 이런 지역들, 즉 대로와 인접해 있으면서 사람들이 항상 북적대는 인도들은 예보와 상관없이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인 상황으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차량통행이 많은 도로의 경우는 차량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먼지가 머무는 탓에 도로 위는 언제나 미세먼지로 가득하고, 도로에서 3m 이내의 공간, 즉 인도까지 미세먼지로 뒤덮이는 위험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인도가 도로만큼 위험할수 있다는 얘깁니다.

서울 도심의 상당수 지역은 인도가 도로와 바싹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로는 대로대로, 이면도로는 이면도로대로 서울 도심을 거닐면서 차가 없는 곳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서울 도심에 생활하는 이들은 늘 이렇게 도로와 접한 인도를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이런 인도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노점상은 물론 교통 경찰, 버스 등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 등 사실상 대부분의 시민들은 하루에 상당 시간을 미세먼지가 가득한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예보의 기초자료가 되는 측정소들은 과연 어떤 곳에 있길래 이렇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예보가 나오는 걸까요?

서울시내 미세먼지 관측소의 위치를 전수 분석해봤습니다. 서울시 전역에는 39곳의 미세먼지 관측소가 있는데, 그 가운데 64%인 25곳이 놀랍게도 숲 한가운데 또는 아예 인적이 없는 옥상이나 차량이 없는 공원 등에 있었습니다.

정작 미세먼지가 많은 곳은 놔두고 차량 통행조차 없는 곳에서 관측한 예보를 믿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야외생활을 해온 겁니다. 서울시 전역의 인구와 면적을 생각할 때 측정소가 39곳에 불과하다는 것도 예보의 정확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중요한 요솝니다.  

그나마 서울에 가장 많은 측정소가 있는 상황이다 보니, 서울을 제외한 전국 다른 지역 미세먼지 예보의 정확성은 더욱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랜 기간 미세먼지의 유해성을 연구해온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김창수 교수팀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응급실 내원환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은 공황장애나 우울증 환자가 그렇지 않은 날보다 10%나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이미 예방의학 분야에선 미세먼지 특히 초미세먼지가 인체에 치명적으로 위험하며, 초미세먼지가 뇌에 직접 침투해 치매를 유발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화여대 의대 예방의학과 하은희 교수팀은 국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오랜 연구를 통해 임신 중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태아의 신장과 머리 둘레가 작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아이들이 출생 직후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그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겁니다.

WHO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미세먼지는 입자 크기에 따라 미세먼지와 그보다 더 작은 초미세먼지로 세분화됩니다. 미세먼지는 황사와 헷갈리지만 황사는 대부분 흙먼지인 반면, 미세먼지는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가 연소되면서 발생되는 오염물질입니다. 

전문가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한국의 미세먼지가 중국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미세먼지에 중국이 미치는 영향은 30% 선에 불과하다고 분석합니다. 

환경부는 국내 미세먼지의 최대 70%는 국내에서 자체 생성된다고 밝혔고, 앞서 언급했듯 국립환경과학원은 수도권 미세먼지 배출량의 41%가 디젤차에서 배출된다고 집계했습니다.      

그런데, 왜 같은 화석연료인 석유를 쓰는데 휘발유를 쓰는 가솔린차보다 경유를 쓰는 디젤차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걸까요? 

그건 연료의 특성 때문입니다. 원래 경유는 황이 많이 포함된 지저분한 연료라서, 이것을 연소시킬 때 나오는  탄소산화물,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 배기가스가 가솔린을 연소시킬때 보다 훨씬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나오는 다량의 배기가스는 잘 걸러줘야 하는데, 배기가스를 걸러주는 장치가 잘못 되거나 노후되면 대기중에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은 디젤차의 배기가스를 실제보다 훨씬 적게 조작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전체 등록 자동차 가운데 30%가 채 되지 않던 디젤차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40%를 돌파했습니다. 국내에서 운행하는 차 10대 가운데 4대는 디젤차인 셈, 최근 도심의 미세먼지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자동차 전문가인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유럽을 벗어나서 디젤차가 활성화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디젤 게이트'(폭스바겐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사건)같은 일이 터지고 나서 선진국에서는 디젤차 판매가 준 반면, 국내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증가하는 사회적인 인식부족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디젤차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확산해 있어 '디젤 게이트' 이후 경유차를 사지 않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디젤차가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돼 있지 않다보니 디젤게이트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의 공격적인 가격할인 공세에 도리어 디젤차를 더 많이 구매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5년간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추적하며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온 대표적 환경운동가 가운데 한 사람인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그는 이렇게 미세먼지 상황이 심각한데도, 그리고 그 원인이 이토록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 나라는 없다고 강변합니다.

이미 일찍부터 디젤차로 인한 대기 오염의 위험성을 인지한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은 도심 내 디젤차 진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정책을 펼친 후 획기적으로 공기가 맑아졌습니다.   

지난 4월 23일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최초로 미세먼지 경보가 대구에서 발령됐습니다. 최악의 미세먼지는 고양과 김포 등 수도권도 엄습해 역시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이날의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라는 베이징과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미세먼지는 중국 탓만 해서도 안 되고, 예보만 믿어서도 안 되는 바로 우리 코앞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물질이 됐습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미세먼지 줄이기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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