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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7살 원영이가 이승에 남긴 편지

[취재파일] 7살 원영이가 이승에 남긴 편지
3월, 아직 채 녹지 않은 경기도 평택의 얼어붙은 땅은 차가웠다. 양말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2시간이 넘게 서 있던 땅에서 한기가 올라와 발가락은 감각이 없어졌다. “살해했다”는 계모의 자백이 나온 지 10시간 만에 원영이는 50cm 깊이 땅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흙 속에 원영이는 이불도 없이 맨몸으로 묻혀 있었다. 왼쪽 이마에는 무엇엔가 맞은 자국 위에 거즈가 붙어 있었다.

철야 당직을 하던중 계모가 자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맥이 탁 풀렸다.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끊어졌다. 전날 드론까지 투입해 평택에서 실종된 7살 신원영 군을 찾기 시작했다는 리포트를 한 지 채 6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서둘러 경기도 평택경찰서로 향했다. 원영이가 묻혔던 곳은 평택경찰서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야산이었다. 할아버지가 묻힌 곳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형사 생활 오래했지만 이렇게 눈물이 나는 사건은 또 처음입니다.”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 잔뼈가 굵은 강력반 형사들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어요.” 조사를 하면서 밤잠을 설친 형사들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나왔다.

● 원영이는 왜 죽어야 했나

3개월이었다. 계모와 친부는 원영이를 화장실에 가두고 사육했다. 국립과학수사원은 원영이가 기아, 다발성 피하 출혈, 저체온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사망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원영이는 갇혀 있던 세 달만 굶은 게 아니었다.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들리기 전, 실종 사건을 취재하던 중 후배 기자가 그간 원영이 남매가 아동보호센터에서 받은 상담 내역이 담긴 기록을 구해왔다. 원영이는 유독 먹을 것에 집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014년  5월 20일.  밥을 두 번이나 받아 먹었음. 매우 배고파함.
-2014년  8월 11일.  넘어지거나 누가 괴롭히면 말없이 눈물을 흘림.
-2014년  9월  3일.   집에서 밥을 못 먹었다면서 간식과 저녁을 많이 먹음.
-2014년  9월 30일.  저녁을 걱정될 정도로 많이 먹음.
-2014년 10월 15일. 아침을 못 먹는다고 먹을 것에 많이 집착함.
-2014년 10월 20일. 아침에 너무 배가 고팠는데 김밥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함.

아동보호센터는 원영이의 집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개입 필요’라는 말이 수 십 쪽에 걸쳐 여러 번 나왔다. 센터에 장기간 출석하지 않자 경찰과 함께 초인종을 누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계모 김 씨와 친부는 “내 자식 내가 키운다”며 쌀쌀맞게 몰아붙였다.

-2014년 12월 2일. 1주일 넘게 같은 옷을 입고, 우산 없이 다니는 것을 보고 계모와 통화했는데, “우산을 사줘도 지들이 잃어버리는데 왜 사줘야 하냐”고 말했고, 이후 친부가 전화를 해서 “친엄마도 밥을 안줬는데 왜 이 여자에게 그러냐”고 말함.
-2015년 1월 13일. 원영이가 보이지 않아 묻자, 보호자는 잘 있는데 왜 건드리느냐고 화를 냈고, 앞으로 확실한 증거 없이는 이런 식의 가정 방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함.
-2015년 2월 17일. 아이들 학습 교재를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초인종을 눌렀지만 학교 경비실에 맡기라고 쌀쌀맞게 응대함.
-2015년 3월 3일. 계모의 문자, “원영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럽네요. (중략)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맡아서 키워주셔도 됩니다.”

원영이 남매를 담당했던 아동보호센터 관계자는 2015년 4월, 장기간 출석하지 않은 남매를 등록 취소했다. 그때부터 원영이 남매는 오롯이 계모와 친부의 몫이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원영이는 화장실에 갇혔다. 실종 사건이 알려진 뒤 통화한 관계자는 왜 등록을 취소했느냐는 질문에 “장기 결석자의 경우, 친권을 가진 부모가 원하지 않을 경우 등록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답변을 했다.

● '가정은 회복되어야 한다'라는 '신화'

원영이 사건 이전부터 아동 학대 사건을 취재하며 느꼈던 답답함은 이렇듯 아이를 맡고 있는 ‘부모’가 친권을 앞세워 강력하게 아동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할 때, 아동보호센터를 비롯한 관계기관이 ‘관리’에 대해 질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의 영역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특히 부모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소위 ‘번듯한’ 경우 더 그랬다. 원영이의 경우에도 친부는 월 수입 500만 원이 넘는 번듯한 직장인이었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부모가 “당신이 내 자식을 책임질 거냐”고 물을 때 ‘기관’은 책임질 여력이 없었다.

2014년 9월부터 시행된 아동학대 특례법에 따르면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장을 조사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가정과 아동을 격리할 수 있지만, 학대 아동에게서 심각한 외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부모’의 뜻을 거슬러 임시조치를 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판단’의 책임이 어느 기관에 있는지 정하는 것도 실질적인 문제가 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보호기관은 경찰에 통보할 의무가 있다. 이후 경찰이 상황을 파악하고 ‘접근금지’를 포함한 임시조치 신청을 하게 되는데, 검찰은 임시조치가 시행된 지 72시간 안에 경찰로부터 신청을 받아야 법원에 공식적인 임시조치 ‘청구’를 할 수 있다.

부모의 상습 학대 정황이 발견되면 형사사건으로도 입건돼 지방법원 형사 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보통 가장 기본적인 접근금지 조치를 포함해 부모와 자녀의 물리적인 거리를 규정짓는 건 가정법원에서 총괄한다.

지난 1월 수 년에 걸쳐 어머니의 잦은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집을 나와 격리조치를 요청한 고등학생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학생은 경찰의 초동 조치 미흡으로 ‘접근금지’ 시한을 넘기는 바람에 40일 가까운 시간 동안 부모로부터의 공식적인 격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을 오가며 취재했으나 경찰은 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고, 기관은 “경찰에 통보했고 이후 판단은 경찰의 몫”이라 했다. 검찰은 “72시간을 넘겨 신청한 경찰이 잘못”이라 했다. 기관들은 서로 ‘판단의 책임’을 미뤘고, ‘학대받는 아동’에 대한 보호는 사이사이마다 ‘펑크’가 났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며 누가 봐도 ‘번듯한’ 직업을 가진 학생의 부모를 보곤 어느 기관도 선뜻 책임지고 ‘학대’라는 마침표를 찍는 것을 두려워했다. 눈에 띄는 큰 외상이 없는 터라 더 그랬다. 내가 낳은 자식, 돈 들여 내가 키우겠다는데 왜 가족을 찢어 놓느냐는 ‘친권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기자 양반, 가정이 찢어지면 되겠소?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지만 이 학생이 집으로 잘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반론 취재를 위해 통화했던 담당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 회복의 옳은 방향과 '공적 부조'의 몫

전 청소년보호위원장 강지원 변호사는 말한다. “가정은 물론 회복돼야 하죠. 그러나 그 회복은 부모의 변화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불화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처절하게 반성하고 고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몇 달 전 성황리에 끝난 ‘응답하라 1988’의 슬로건처럼 '내 마지막 사랑은 가족'일 수 있는 행운은 모두에게 찾아오진 않는다. 기아 직전 구조된 인천 11살 소녀가 그랬고, 끝내 차가운 땅에서 발견되고 만 평택의 7살 원영이가 그랬다.

-2014년 6월 11일. 선생님을 우주만큼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로 밝아졌음.

늘 배고팠던 원영이에게 ‘아동보호센터’는 집보다 더 마음 편한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도생’의 ‘복불복’으로부터 7살 원영이를 지킬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존권 보장, 제대로 된 사회라면 반드시 가능해야 할 올바른 ‘공적 부조’, 그리고 나아가 ‘가정 회복’의 방향이 아닐까. 가족이 반드시 최종 결론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거둬들이고 아이들부터 살려야 할 때다.

원영이에게도 회복돼야 할 가정이 있었다. 상담 일지에는 빨래를 하려던 계모에게 발견돼 미처 친어머니에게 전해지지 않은 원영 남매의 편지도 있었다. 13일 일요일. 한 줌의 재가 된 원영이의 편지는 여기 이대로 남아있다.

-2014년 10월 27일.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세요. 원영이가 많이 보고 싶어 해요. 저도 보고 싶고요. 근데 저에게 불만이 생겼어요. (새)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대신 방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고 밥도 밥은커녕 김밥만 줘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사랑해요. 원영 남매 올림.”

※ <7살 실종아동 신원영>의 취재를 위해 원종진, 전형우 두 수습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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