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판사님, 글씨를 알고 계십니까?"…13년 동안 참아온 외침

[취재파일] "판사님, 글씨를 알고 계십니까?"…13년 동안 참아온 외침
▲ '대전 특허법원 711호'
 
지난 22일(금) 오전 10시 대전 특허법원 711호 법정. 주심 판사 1명과 배석판사 2명이 입장하자 방청석에 있던 참관인들을 비롯해 법정 안에 있던 20여명이 일어서고, 판사가 먼저 착석하자 모두 따라 자리에 앉는다.
주심 판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예고된 8건의 재판에 대한 선고결과를 빠르게 읽어 내린다. 마이크를 사용했지만 같은 방 10미터 앞의 방청석에서도 잘 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다.

“사건번호 2014허 7547 거절결정, 원고 홈플러스 주식회사 피고 특허청장,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사건번호 2015허 2433 권리범위 확인, 원고 서오텔레콤 주식회사 피고 주식회사 LG유플러스,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 : “기각한다는 거야?”)

“2015허 2754 거절결정, 원고 이00 원고 이00 피고 특허청장,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이어진 5건의 선고를 포함해 8건 모두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 한다’ 단 두 문장이었다. 사건번호와 명칭, 원고, 피고, 주문을 포함해 8건의 재판결과를 모두 읽어 내리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방청석에서 나지막이 “기각한다는 거야?”라고 되묻던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은 주문 낭독이 끝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게 전부냐’고 재판장에게 따져 묻는다.

김 사장 : “끝 난거에요. 끝난 겁니까? 예?”
(재판장 :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 사장 : ”아니, 서오텔레콤인데요. 지금 이거 사건 기각한 겁니까?”
(재판장 : “서오텔레콤 사건? 원고청구 기각됐습니다.”)

김 사장 : ”글씨를 알고 계십니까?“ 
(재판장 :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 판결 선고기일입니다. 재판기일이 아니고? 판결 선고하는 기일로 지정하지 않았습니까. 재판은 지난번에 다 끝났고요. 변론 종결됐습니다.“)

김 사장 : “아니 그런데요. 뭐가, 뭣 때문에 기각이냐 이거죠.”
(재판장 : 그건 판결문에 이유가 써 있으니까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김 사장 : “여기 특허법원이 존재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재판장 : “소송 대리인이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김 사장 : “소송 대리인이고 뭐고, 본인이잖아요. 제가.”
(재판장 : “설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절차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판결 선고가 되면 판결 선고에 대한 이유는 판결문에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걸 보시고”)

김 사장 : “아니 거짓말하는 것을 덮어 버리는 이런 재판이 어디 있어요. 이런 나라가 지금 법치 국가 입니까. 예?”
(재판장 : “경위 뭐하십니까. 지금. 자 다음 사건 진행하겠습니다.”

김 사장 : “당신 같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사니 나라 망하는 거야, 지금.”

경위에 이끌려 법정 옆 대기실로 나오던 김 사장은 분이 안 풀린 듯 다시 말한다.

김 사장 : “이게 존재할 이유가 없다니까. 이런 재판은...어휴. 이게 되는 일이야 이게, 말도 안 되잖아. 검사 00가 날짜를 조작해가지고, ‘특허 침해는 인정하나 고소 날짜가 지났다’고 공문서를 위조하지 않나. 심판관 두 명이 있는데서, 재판관 두 명이 있는 데서 거짓말이 들통 났으면 끝나야 될 거 아니야. 형사사건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 봤기 때문에 엄히 처벌하는 거야. 그런데 이 여기(민사)는 완전히 거짓말 공연장이야, 공연장. 거짓말 잘하는 이런 재판은 왜 하느냐 말이야.”

경  위 : “조용히 해 주세요, 재판해야 되니까.”
김 사장 : “아니 저런 재판은 들으면 뭐 하겠어요.”
경  위 : “아, 조용히 해주세요. 지금 재판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지금.”

경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제가 9층 민원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감치’ 밖에 더 되겠습니까. 거기서 다음에 어떻게 하실 것인지 안내 받으시지요”라고 말한다. 같은 특허 문제로 지난 13년간 소송을 해 오면서 이번만은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는 김 사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10년 전, 아니 정확히는 9년 11개월 전인 2006년 2월22일 SBS 탐사 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서오텔레콤과 LG텔레콤(지금은 LG유플러스)의 특허 다툼 문제를 방송했던 기자는 너무 미안하다. 내가 김 사장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9층 민원실을 거쳐 특허법원 1층 로비로 김 사장을 데리고 내려왔다. 천 원짜리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 자동판매기에 넣고 3백 원짜리 이른바 ‘다방커피’를 빼내 건넸다. 그리고 위로한다며 염장 지르는 소리를 했다. “그것 보세요. 제가 벌써 오래 전에 다른 길을 찾으라고 했잖아요. 한국에서 소송 해봐야 승산 없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제가 큰 기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특허법원 앞에서 김 사장 일행과 헤어졌다. 한 바탕 소동이 지나갔지만 시간은 이제 오전 10시35분, 선고공판이 시작된 지 3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 업체와 업무 협의하는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
● "특허법정은 거짓말 공연장"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이 가산을 탕진해 가며 13년째 대기업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특허 침해와 증거조작, 증거인멸 시도가 너무 명백해서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1999년과 2000년 서울 도봉구과 경기도 이천 등에서 잇따르는 흉악범죄를 보고, 범죄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 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긴급구난 요청’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LG측을 찾아가 사업화 방안을 논의했는데, 2004년 LG텔레콤이 기술도입계약은 하지 않고 서오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알라딘 폰’을 출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15만대 이상 팔렸다고 한다.

긴급 상황에 처한 사람이 휴대전화 옆에 있는 긴급구조 버튼만 2초 이상 누르면 미리 입력해 놓은 119나 가족, 친구 등의 전화로 구조 메시지가 전송되고, 현장 도청기능이 작동하면서 현장 음이 그대로 전송 녹음된다. 주머니나 핸드폰 속에서 전원이 꺼져 있어도 덮개가 닫혀 있어도 작동하도록 돼 있다.

김성수 서오텔레콤 사장은 “법정에서 거짓말과 증거조작, 증거 인멸 시도가 끊임없이 드러나는 데도 재판결과는 엉뚱하게 나온다”며, “분통이 터져 자살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한다.

다음은 김 사장이 소송 과정에서 어이없이 당했다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1. “긴급구조 방식이 다르다는 LG유플러스의 주장은 ‘거짓’ 이었다”

LG유플러스가 자신들의 알라딘 서비스가 서오텔레콤의 긴급 콜 방식과 다르다고 주장한 근거는, 긴급호출 대상 전화번호와 구조요청 메시지가 서오가 단말기에 저장하는 것과 달리 LG유플러스는 본사 서버에 저장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1월5부터 6일까지 서오텔레콤이 통화한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의 상담 직원 3명은 모두 전화번호가 고객의 휴대전화 단말기에 저장되며, 본사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2. “죽였다던 알라딘 서비스는 살아 있었다“

2015년1월7일. 1심 재판부 특허심판원의 쌍방대질 기술설명회에서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서오의 긴급호출 서비스는 실패한 사업으로 LG유플러스도 알라딘 서비스를 중단했다”며, 휴대전화 2대를 심판관에게 전달했다. 심판관들이 휴대전화를 받아 시험한 결과 LG측이 제시한 휴대전화는 긴급버튼 서비스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서오텔레콤측이 가지고 온 휴대전화를 꺼내 시도해 보니 LG와는 다르게 정상적으로 긴급버튼 서비스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다. 특허심판원 심판관이 해명을 요구했지만, LG유플러스 관계자들은 얼굴만 빨개진 채 답변을 하지 못했다.    

2015년10월29일. 2심 재판부인 특허법원의 재판정에서 재판장이 ‘LG유플러스 측에 알라딘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묻자, LG유플러스 측은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1심 특허심판원에서 “서비스를 중단했다”던 증언과 정반대되는 말이다. 특허법원 재판장 앞에서 위증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특허법원은 그러나 위증을 확인하고도 진술번복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3. “알라딘 서비스 개발자가 모두 퇴사했다더니 회사에서 다들 전화를 받았다”

2016년1월15일. 특허심판원 구술심리에서 심판장은 LG유플러스측에 기술설명회때 동작이 안 된 이유를 재차 묻고, 알라딘 서비스 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에 의한 사실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LG측은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은 모두 퇴사하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오텔레콤 측이 전화를 걸어본 결과 기술개발에 참여했던 직원들은 5명 모두가 LG유플러스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었다.  

4. “검사는 고소시한을 조작했다“

2008년7월21일 서오텔레콤은 당시 정일재 LG텔레콤 대표와 남용 LG전자 부회장을 특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조사도중 LG측 요청에 따라 2008년9월12일 서울서부지검으로 이첩되어 관할 마포경찰서에서 4개월간 LG측 관련자와 서오 측 증인 등을 조사했다.

사건을 수사한 마포경찰서는 “진동발생, 비상모드 수화음성 금지, 긴급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도청모드 실행 등에 대해서 특허침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소의견으로 서부지검에 송치하였지만, 서부지검은 2009년1월22일 “특허는 침해한 것으로 보이나 고소시한 6개월(2008년7월27일)이 지났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서오가 중앙지검에 고소한 날이 아닌 서부지검으로 이첩한 날을 고소일로 본 것이다.

2009년6월16일 서울고등검찰청은 고소날짜 조작사실을 밝혀내고 재수사 명령을 내렸지만 재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건담당검사의 고소 시한 조작으로 인해 내려진 불기소처분은 모든 재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5. “법원은 석명하라는 명령도 응하지 않았는데 손을 들어줬다”

2015년1월15일. 특허심판원 구술심리에서 심판관들은 긴급구조 요청 콜 방식과 관련 LG유플러스의 주장이 일관성이 없다며 1)서오텔레콤의 방식과 차이점을 확인해서 제출하고, 2) LG유플러스의 알라딘 폰 서비스와 관련된 기술사양, 자료, 기술자의 사실 확인서를 증거자료로 제출하며, 3)LG측이 제시한 알라딘 폰 서비스가 1월7일 기술설명회 때 왜 동작을 하지 않았는지 사실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LG유플러스 측은 사실 확인서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특허심판원은 2015년3월6일 서오텔레콤의 긴급호출 방식과 LG유플러스의 알라딘 폰은 방식이 다르다며 심판 청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 (오른쪽)
● "다시 도전할래요. 승리 가능성이 더 커졌습니다."

지난 22일 특허법원은 ‘서오의 긴급구조 콜과 LG유플러스의 알라딘 서비스가 다르다’며, ‘서오의 특허침해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하나의 통화채널로 국내외 관계없이 구조 신호를 보내는 서오와 달리, LG유플러스의 알라딘 폰은 로밍지역(해외)과 비로밍지역(국내)에서 작동 방식이 다르고, 첫 번째 통화채널로 구조요청 신호와 긴급메시지를 보낸 뒤 접속 연결을 강제로 끊고 5초 후에 다시 재접속을 시도해 현장상황을 전하는 이른바 투 채널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KT, SKT, 서울대, 한세대 정보통신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은 LG유플러스 측이 주장하는 이른바 투 채널 긴급버튼 서비스 방식이 국제표준규약에 위배되고, 현실성이 없다며 특허침해 사실이 명백하다는 의견을 특허법원에 전달했다”고 서오 측은 밝혔다.

특허법원이 판결문에서 “서오의 특허기술과 같이 하나의 통화채널로 안심문자메시지를 전송하고 음성통화도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고 명시하면서도 판결은 반대로 내린 것도 석연치 않다”고 말한다.

서오텔레콤의 김성수 사장은 소송을 하면 할수록 서오 측의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지고, LG유플러스 측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다며, 다음번 소송에서는 승소를 장담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IT 산업, 나아가 한국의 미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알라딘 폰 관련 통신망과 기기를 가지고 있는 LG유플러스 측과 통신서비스의 진위를 놓고 다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법조계는 물론 정부 관계자들도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서오의 승리 가능성에 고개를 젓는다.

지난 18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을 찾아가 로펌의 해외지분율을 49%로 제한하는 법률시장 개방안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했다. 해외로펌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개방수준을 더 높여달라는 주장이다. 김성수 사장은 해외 법률서비스 기관들의 요구대로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자신과 같이 억울한 사람들이 좀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