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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상봉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죽어도 소원 없어"

이산상봉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죽어도 소원 없어"
"고마운 세상이야. 우리 재은이를 만나고…. 내가 죽어도 소원이 없어."

헤어지는 순간, 다행히 아들을 다시 알아본 구순(九旬)의 노모는 아들의 볼에 입을 맞췄습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이제 정상이시네."

60여 년 만에 어머니가 불러주는 이름에 아들은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치매로 앞에 앉은 아들조차 인식하지 못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김월순(93) 할머니가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다시 아들을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고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붉은색 알이 박힌 금반지 하나를 빼서 북측에 두고 온 장남 주재은(72) 씨에게 건넸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주려고 오랜 시간 끼고 있던 반지입니다.

재은씨는 괜찮다고 한사코 사양했으나 김 할머니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일 수도 있는 반지를 아들의 손에 꼭 쥐여줬습니다.

"안 필요해도 내가 주고 싶어. 갖다 버리더라도 갖고 가라." 그러면서 긴 세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던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쓰다듬었습니다.

김 할머니의 목에는 전날 개별상봉 때 재은 씨가 선물한 연갈색의 꽃무늬 스카프가 곱게 자리했습니다.

김 할머니는 상봉 첫날인 지난 24일 재은 씨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다 25일 개별상봉 때 잠시 알아보기도 했지만, 이후 열린 공동중식과 단체상봉에서는 "이이는 누구야?"라며 다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상봉 마지막 날인 이날 아들과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려는 듯 다시 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함경남도 갑산군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1·4 후퇴 때 재은 씨를 친정에 맡긴 채 둘째 아들 재희 씨만 업고 먼저 피난 간 남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재은 씨에게 "열흘만 있다 올게. 갔다 올게"라고 하고 나간 것이 60여 년이 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어느덧 칠순의 노인이 된 재은 씨는 어머니에게 부부증명사진을 보여주며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다시 들려줬습니다.

북쪽에서 낳은 아이들도 장성해 대학도 보내고 교수도 됐다고 자랑했습니다.

"통일되면 우리 집에 와서 살아요, 할머니. 우리는 할머니 고향에서 살아요"라는 북측의 손녀의 말에 할머니는 잠시 옛날 생각이 나는 듯 "고향에서 왔어? 기가 막히는구나…"라며 먼 산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작별의 시간.

북측의 장남은 몸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타고 갈 휠체어를 묵묵히 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어머니를 바라봤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십쇼. 통일되면 내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한 재은 씨는 남측 동생 재희 씨를 부둥켜안으며 "건강하게 살아라"라고 당부했습니다.

"형, 마지막이 아니야. 이건 시작이야, 형이 어머니 모셔야 해. 왜 내가 어머니를 모셔. 장남인 형이 모셔야지. 나 이제 안 모실 거야."

동생은 형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정을 부리며 오열했고, 형은 그런 동생에게 "알았다, 알았다"라며 어깨를 토닥여줬습니다.

이내 마음을 강하게 먹은 재은 씨는 "어머니, 살아 있으십시오"라며 어머니에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인사를 했습니다.

김 할머니는 그러나 그러는 아들이 낯선 듯 "같이 안 가? 나 데리고 집에 갈 거지?"라며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다시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에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지 못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통일되면 만납시다, 어머니"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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