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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 노예였다"…70년 전 목격자의 증언

[SBS 스페셜] 최후의 심판 - 2부 위안부로 죽고 싶지 않다
 
올해 '위안부' 할머니 여덟 분이 그 고단한 생을 마감하셨다. 이젠 고작 47분 만이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증언할 수 있다. 아흔에 가까운 할머니들은 더 이상 일본에 사죄하라 외칠 힘도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열여섯, 열일곱이었던 일본군 ‘위안부’들이 아흔이 되도록 왜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을까.

▶ '파란 눈'의 목격자, 존 프랭큰
 
캐나다 오타와에서 만난 아흔 셋의 존 프랭큰(John Franken) 할아버지. 네덜란드군 해군으로 복무하던 그는 일본군 포로로 잡힌 뒤 끔찍한 광경을 매일 보아야 했다. 그의 임무는 초등학교에 칸막이를 치고, 위안소의 침상을 정리하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은 하얀 천으로 줄을 만들어 문 앞에 거는 것이었다.
 
"수건을 묶어서 줄을 만들면 위안부들이 그 위를 걸어가면서 정액을 닦고 그 다음 들어올 병사를 위해 준비했어요. 위안부 한 명당 15명에서 20명의 병사들이 배정됐죠."
 
밤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절규를 기억한다는 프랭큰 할아버지. 그가 타국 언론 앞에 선 이유는 단 하나. 증언할 수 있는 목격자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일본이 이 역사를 지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위안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본군 포로가 전하는 이야기. 위안소에서 일했던 서양인이 직접 전하는, 듣기 불편할 정도로 생생한 위안소의 모습이 7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됐다. 
 
▶ 70년만의 사과, 일본군 할아버지의 고백
 
제작진은 취재 도중, 자신을 옛 일본군이라고 밝힌 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중국 최전방에서 3년을 생활하며 '위안부'를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들이 강제로 끌려 온 것이라고 얘기해 주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열다섯, 월경이 시작하기도 전에 중국 지린성에서 '토미코'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이옥선 할머니와의 만남. 어색한 침묵 속에 어쩔 줄 모르고 깍지 낀 손. 할머니의 증언은 할아버지에게도 충격이었다. 불편한 몸으로도 허리를 굽힌 할아버지.

"위안부가 이런 것인 줄 70년 동안이나 몰랐다니…."

▶ 영웅과 전범 사이, 그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1946년 도쿄 전범재판소로 쓰인 일본 방위성의 이치가야 박물관. 재판장이 앉았던 자리엔 A급 전범의 칼이 그 위용을 뽐내고, 군 통수권자였던 일왕 히로히토와 장교 삼천 명의 출전식 장면은 '영광스런 일본'을 상기시킨다. 일본은 보훈법(은호법)을 개정해 극동군사재판 이후 교수형을 당한 A급 전범의 후손들에게까지 연금을 주고 있다. 침략전쟁의 '전쟁 범죄자'들은 '영웅'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세계의 주목을 끈 재판이 독일 뤼네부르크에서 열렸다.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 회계사였던 93세의 노인, 오스카 그뢰닝에게 징역 4년 형이 떨어진 것이다. 단 한 명의 살인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항변하는 그에게 '살인보조죄'가 적용되었다. 나치 조력자들까지 단죄할 수 있도록 법해석을 새롭게 한 것이다. 독일은 왜 70년의 세월을 넘어 사소한 죄인까지 심판하려는 것일까.

▶ 누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가로 막는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강한 일본을 지향하는 일본 정부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위안부의 존재를 배운 적이 없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시끄러운 이웃일 뿐이다. 중국을 경계해 그 어느 때보다  밀착된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선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해 일본의 제국주의 확장을 눈감아준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상황이 연상된다.
 
'강제 연행'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역사의 진실을 보려는 사람들을 착실히 제거해 나가는 일본 정부의 속셈은 무엇인가. 위안부 문제가 왜 '위안부' 할머니들을 넘어 우리의 문제인지, 왜 최후의 심판이 필요한 지 무서운 아베 내각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 '최후의 나치 헌터'가 주는 교훈
 
오랜 동안의 설득 끝에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최후의 나치 헌터, 이스라엘의 에프라임 주로프 박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2005년 사망 직전까지 무려 1천100명의 전범을 재판정에 세운 전설적인 나치 사냥꾼, 사이먼 비젠탈의 후계자다. 유대인이 주축이 된 강한 피해자야 말로 과거사 심판의 힘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에게 반문한다.
 
"한국은 끈질기게 일본 전범과 그 협력자들을 추적한 적이 있는가? 한국은 강력한 의지로 일본을 사죄하게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했는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증언을 듣고자 한다면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는 이용수 할머니. 그녀의 소원은 '일본군 위안부'가 아닌 '이용수'의 이름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리 구차하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압니까? 이 일을 가슴에 묻고 가기에는 너무 억울한 기라…."
 
나라를 찾은 지 70년. 그 오랜 세월동안 풀리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의 미스터리를 광복 70주년 특집 '최후의 심판 - 2부 위안부로 죽고 싶지 않다'에서 살펴봤다.

(SBS 뉴미디어부) 

▶"위안부가 이런 것인 줄"…일본군 할아버지의 사과
▶"말뿐인 사죄는 쓸모없다"…나치 사냥꾼의 교훈

▶[SBS 스페셜] 최후의 심판 - 1부 엄마여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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