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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엘리엇은 왜 삼성에 시비를 걸었나?

[취재파일] 엘리엇은 왜 삼성에 시비를 걸었나?
목요일(4일) 이른 아침. 엘리엇 매니지먼트라는 미국 헤지펀드가 국내 홍보대행사를 통해 짧은 보도자료를 배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운용자산 미화 260억 달러, 한화 약 29조 원)는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렇게 소개했다.

"1977년 설립된 엘리엇은 엘리엇 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 인터내셔널 두 가지의 펀드를 운영하며, 전체 운용자산이 미화 260억 달러(약 29조 원)에 달한다. 엘리엇의 투자전략은 주주가치 증대와 도덕적인 기업지배구조라는 바탕에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자이다"

비문 섞인 코멘트. 엘리엇 측은 국내 홍보대행사와 최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전격적인 의사 결정으로 추측된다.

엘리엇 측이 공시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6월3일 장내매수를 통해 삼성물산 보통주 1,112만 5927주를 주당 단가 6만 3천500원에 매입했다.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7.12%다. 지분 보유목적은 ‘경영참가’에 있다. 주식 취득자금은 자기자금 2천156억여 원이다”

● 잘못된 공시

이 공시에는 오류가 있다. 어제(3일) 삼성물산의 거래량은 417만여 주. 그러니까 어제 엘리엇 측이 삼성물산 주식 1,112만여 주를 한꺼번에 사들일 수는 없었다. 금융감독원 공시담당 팀장의 설명은 이렇다. “공시에 오류가 있다. 엘리엇 측이 이미 삼성물산 지분 4.95% 정도를 보유한 주주였다. 어제는 340만주 가량을 추가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 6만 3천500원이라는 주식 취득단가도 어제 매입한 단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 보유 주식의 매입 시기와 취득단가를 정정해서 다시 공시해야 한다.”

즉 엘리엇 측은 이미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다. 5% 이상의 지분이 안 돼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 왜 불만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이다. 대략 삼성물산 주식 3주가 제일모직 주식 1주로 교환된다는 뜻이다. 제일모직 측의 IR 자료에 따르면 합병 전 제일모직의 자산은 9.5조 원 수준이고 삼성물산의 자산은 29.5조 원 수준이다. 삼성물산이 3배 더 크다. 매출액은 제일모직이 5.1조 원, 삼성물산이 28.4조 원. 삼성물산이 6배 가깝게 크다. 그런데 합병비율은 합병결의 직전 최근 1개월, 1주일, 최근일 가중산술 평균 종가를 다시 산술평균한 가격으로 결정됐다. 법에 따른 합병비율 결정이라지만 삼성물산 주주로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제일모직 주가는 지난해 12월 상장 이후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에 힘입어 가격이 많이 뛰었고, 삼성물산 주가는 거의 2010년 하반기 이후 최저 수준인 시점이었다. “과대평가된 제일모직과 과소평가된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삼성물산 주주들의 큰 불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부각되지 못했다.

● 해외는 달랐다

하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 직후 비판적인 기사를 내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합병에 대한 시선을 싸늘하다”며 이번 합병이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인용한 해외 애널리스트의 코멘트는 “합병의 공식적인 이유가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합병의 목적이 분명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있지만 삼성 측이 밝힌 합병이유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가 발휘돼 5년 내에 매출이 두 배 정도 커질 것이라는 근거 부족한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역시 삼성 3남매가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quite a bargain)'에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 엘리엇은 누구인가?

위키피디아에 나온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미국의 헤지펀드로 설립자는 Paul Singer. 설립 초기부터 시장수익률(S&P 500)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투자자들에게 안겨 주며 명성을 쌓았다. 1977년 130만 달러의 가족, 친지들의 자금으로 Paul Singer가 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엘리엇’은 Paul Singer의 미들 네임이라고 한다. Paul Singer는 1980년대 후반 증시 급락과 1990년 초반 증시 침체기를 거치면서 다중 전략(multi-strategy) 헤지펀드로 운용전략을 바꿨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과 낮은 수익 변동성으로 월가에서 명성을 쌓았다. 뉴욕타임스와 포춘지는 Paul Singer를 월가에서 ‘가장 존경받는(one of the most revered)’ 헤지펀드 매니저라거나 ‘가장 똑똑하고 냉정한(one of the smartest and toughest)' 매니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엘리엇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을 잘 안다는 국내 인사는 이런 말도 전해줬다. 가깝게는 지난 2011년 미국 듀폰사가 덴마크의 식자재 기업 대니스코(Danisco A/S)를 인수한 적이 있다. 당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대니스코의 주요 주주였으며 듀폰의 인수가격이 너무 낮다고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원래 대니스코 이사회를 통과한 주식 매수가격이 있었지만 엘리엇 측이 “주주가치 훼손‘을 주장하며 대니스코의 지분률을 10% 이상으로 높이며 반대를 계속하자 결국 듀폰 측이 대니스코 인수가격을 높였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이 밖에도 2001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당시와 다수의 해외 기업 M&A건에서 문제를 제기해 자신의 수익률을 극대화한 전력이 있다.

● 엘리엇은 합병을 반대할 것인가?

엘리엇 측이 국내 홍보대행사를 통해 밝힌 입장을 보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과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표현은 없다. 합병조건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번 합병에 반대하는 삼성물산 주주들이 행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5만 7,234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보다 비싼 6만 3천500원에 주식을 새로 사들여 합병에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당분간은 삼성그룹에 대한 압박 작전, 또는 여론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성물산의 다른 외국인 주주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현재 삼성물산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31%를 넘지만 범 삼성의 지분율은 13%를 조금 넘을 뿐이다. 엘리엇은 또 국내 특유의 삼성에 대한 정서를 활용해 삼성물산 지분 9% 이상을 보유한 국민연금을 압박할 수도 있다. 자신들과 공동 보조를 취하도록.

● 빌미는 누가?

과거 소버린, 헤르메스, 칼 아이칸 등 여러 사례처럼 외국 헤지펀드, 또는 벌처펀드의 목적은 단순하다. 주주이익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면서 자신들의 펀드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빌미는 거의 대부분 국내 재벌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제공한 것이다. 이번 건도 마찬가지. 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거의 유일한 목적인 삼성그룹 계열사의 합종연횡은 그동안 거침이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비로소 외국 자본이 비집고 들어왔고, 그 빈틈은 삼성이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삼성물산은 "이번 합병 추진 배경은 회사의 미래가치를 제고하여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는데 있다...양사간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 상의 규정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시장이 현재 평가한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적용한 것이다...한편 다양한 주주들과 소통하면서 기업가치 제고에 노력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엘리엇 측의 도발을 무시하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의 공격이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의 아킬레스건, 즉 지배구조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SK나 KT&G의 경우와는 무게감이 비교되지 않는다. 삼성과 엘리엇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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