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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네팔 지진 취재기 ① 카트만두로 가는 멀고 험한 길

[월드리포트] 네팔 지진 취재기 ① 카트만두로 가는 멀고 험한 길
중국 특파원이 되기 전까지는 지진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조금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땅이 흔들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런데 지금은 지나치게 충분히 느끼고 알았습니다. 여러 곳의 지진현장을 취재하러 다녔고 크고 작은 여진을 경험해서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육지에서 쪽배를 탄 기분입니다. 흔들흔들, 울렁울렁.

네팔(중국어로 니보얼)에서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든 첫 생각은 '아, 네팔에도 큰 지진이 나는구나.' 세계 양대 지진대의 하나인 히말라야-알프스 지진대 가운데 최근에는 유독 중국의 쓰촨과 윈난에서만 지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 산맥 자체는 육중한 산들이 대지를 내리누르고 있어 지진이 잘 나지 않나보다 했습니다. 무식한 추측이었습니다.

출장 지시를 받고 비행 편을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카트만두 공항이 폐쇄돼 예정된 비행편도 모두 결항이었습니다. 고민이었습니다. 경유지인 광둥의 광저우나 윈난의 쿤밍시에 일단 가서 카트만두 공항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하나.
취재파일

26일 오전 드디어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편이 딱 한 편 마련됐습니다. 광둥의 광저우시에서 갈아타는 코스였습니다. 알고 보니 중국의 가장 큰 구호기금에서 보내는 구조대를 싣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구조대와 함께 가니 무슨 수로든 카트만두에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예약을 한 뒤 여행 가방을 챙기는 둥 마는 둥 비행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카메라 기자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방송 기자는 거의 대부분 영상취재 기자와 함께 움직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인 영상취재 기자는 한국인처럼 도착 비자로 갈음할 수 없고 네팔 비자를 따로 받아야 했기 때문에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카트만두 상공까지는 일사천리였습니다. 광저우에서 내린 뒤 국제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반에 불과해 걱정이 많았습니다. 연착률이 50%에 달하는 중국 비행기를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착은커녕 15분 일찍 도착했습니다. 중국 구조대의 수호 덕분인 듯 했습니다.

카트만두 상공에 도착하면서 저는 상념에 젖었습니다. 가이드나 숙박, 차량 아무 것도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왔는데 앞으로 어찌하나. 영상취재 기자도 없이 혼자서 리포트 제작을 무슨 수로 하나.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통신도 잘 안 된다는데 영상을 국내로 송출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국인 방송 기자 가운데는 가장 먼저 도착했겠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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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기대였습니다. 한 시간 넘게 카트만두 상공을 돌던 중국 비행기는 청천벽력 같은 기내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카트만두 계류장이 꽉 차서 착륙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현재 착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근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으로 회항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연료를 채우고 다시 카트만두 진입을 시도하겠습니다."

이런! 어제 오전에만 해도 네팔 카트만두를 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방글라데시 다카를 가게 생겼습니다. 결국 다카 공항에 착륙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자정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비행기 안에서 대기했다 다시 카트만두로 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쉽게 그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카트만두 공항이 문을 닫아 다음날 가야 한다는 방송과 함께 다카 시내 호텔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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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 기대하지 않았던 방글라데시 입국 도장을 찍었습니다. 어찌어찌 호텔에 가니 새벽 2시, 대충 씻고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다음날 새벽 6시 반에 로비에서 집합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잠을 자야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떻든 되도록 빨리 카트만두에 가야 하니까요.

착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모닝콜 시간이 6시 반이었고 결국 일행이 모두 모여 공항으로 출발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8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조금 초조했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차가 3시간이니 한국 시간 11시, 공항에서 수속 밟고 준비하는데 길어야 2시간일 테니 한국 시간 오후 1시면 출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길이니 오후 2시면 카트만두 도착, 시내에 가서 최대한 빨리 취재하고 기사 송고와 영상 송출을 하면 그날 저녁 8시 뉴스에는 보도를 할 수 있겠다.

또 착각이었습니다. 네팔 측의 비행 허가가 나지 않아 비행기를 탄 채 계류장에서만 3시간을 대기했습니다. 카트만두 상공에 이미 7~8대의 비행기가 내릴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었습니다. 마침내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 출발. 잘만 하면 보도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하지만 헛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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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상공에 도착한 비행기는 역시 선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습니다. 경탄과 함께 속으로 숫자를 매겼습니다. 한 번. 그렇게 히말라야 산맥이 보일 때마다 숫자를 셌습니다. 스무 번째를 세고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드디어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에 깨서 시계를 보니 한국 시간으로 이미 8시가 훌쩍 넘어가 있었습니다. 카트만두 상공에서만 무려 3시간 넘게 선회한 것입니다.

카트만두 공항에 내리고 보니 사정이 이해가 됐습니다. 일단 공항이 매우 작았습니다. 네팔 유일의 국제공항이라는데 우리 강원도 양양 공항만 했습니다. 거기에 계류장마다 구호품을 싣고 온 각국 군 수송기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네팔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물품들입니다. 하늘에서 네팔을 상대로 했던 원망이 쏙 들어갔습니다. 기다리는 게 당연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늦게 출발한 많은 기자들이 이미 먼저 카트만두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속을 상하게 했습니다. 공항 상공에 도착했던 순서대로 번호표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객쩍은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카트만두 지진 현장에 왔습니다. 모든 상황이 막막했지만 괜찮습니다. 내가 그래도 지진 취재 전문 3년 차 기자 아닌가. (현지 취재 뒷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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