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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청년일자리 보호 외치지만…정작 외면받는 국회 인턴

[취재파일] 청년일자리 보호 외치지만…정작 외면받는 국회 인턴
올해 31살의 김모씨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석사까지 마쳤다. 정치전문가를 꿈꾸던 김씨는 국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는데 국회에서 인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하게 된다.

국회에서 인턴을 시작한 김씨는 몇가지 사실에 놀라게 되는데 먼저, 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견습 수준이 아닌 실제 보좌 업무를 해야 하는 인턴이라는 사실이었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적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에 다시 놀랐다. 

누구보다 아침 일찍 출근해 6시 반 전에 퇴근한 기억이 없는데도 월급은 120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점점 일감은 늘어났고 국정감사 기간에는 실제로 특정기관을 감사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한다든지 질의서를 작성하는 일까지 했다. 법안 발의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법제처와 상의하는 일까지도 맡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지만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나중에 정식 비서관이나 보좌관으로 채용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인턴신분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불합리하다고 느꼈죠. 주변에 같은 인턴들이 3년차가 되고 4년차가 되고 그런데도 계속 인턴으로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거죠. 환상이었던, 내가 정말 국회의원을 옆에서 보좌하는 보좌관이 되겠어 라고 했던 그 결심이 한순간에 기약없는 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고 실제로 옆에서 그걸 바라보면서 굉장히 고통스럽고 그리고 더이상 내가 여기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그런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결국 김 씨는 2년 넘게 일했던 국회를 나와 다른 곳에 취직했다.

"상당히 많은 제 친구들, 대학교때 선배들, 대학원 동기들이 지금 국회에 있습니다. 국회에서 인턴으로 다들 시작을 했었던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인턴이고 또 결혼을  해서까지도 인턴 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분들이 정말 다수고 뭔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합니다."

국회에서 취재를 하다보면 주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 비서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아무래도 주요 결정들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취재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인턴들의 존재에 크게 관심을 갖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일하는 인턴들의 실태를 접하고 과연 이게 가능한 지 의문이 들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국회 사무처가 집계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회에서 일하는 인턴은 무려 552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인 115명이 2년 넘게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5년 넘은 사람도 11명이나 됐고,이 가운데는 무려 9년 동안 일한 사람도 있다. 만약에 상시 채용인력이라면 당연히 비정규직 보호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지만 인턴이 여기에 해당하는지조차 모호한 상황 때문에 2년 넘게 일하면서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지 못한다. 인턴으로 매년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연차에 상관없이 국회 인턴 월급은 기본급 120만 원에 시간 외 수당 13만7천 원이 전부다.

그런데 계약 조건도 참으로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국회의원 한 사람은 1년 동안 2명의 인턴을 22개월 동안 쓸 수 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인턴 1명에게는 11개월씩 주어지는 셈이다. 왜 22개월로 정했을까. 24개월이 되면 한 사람이 12개월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1년을 채우게 된다. 그러니까 22개월로 정한 것은 근무 기간을 1년이 안되도록 미리 막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한다. 

여기서 각 의원실은 또 다른 꼼수를 부린다. 앞서 만난 김씨에 따르면 보통 계약기간은 11개월이지만 1년 정도 일한 숙련된 인턴을 그냥 내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모자라는 1개월에 해당하는 임금은 세비나 의원실비로 처리해줘서 사실상 계속 고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나선 11개월 짜리 새로운 계약을 다시 맺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일은 1년 넘게 하면서도 쪼개기 계약 때문에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처리돼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보도가 나가자 국회 사무처는 각 의원실이 22개월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인턴 인력을 운용할 수 있다며 인턴의 채용기간을 11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 상시근로자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인턴제도 도입 취지와 국회의원 보좌진의 인력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1개월의 공백 때문에 계속근로기간이 일 년이 되지 않아 국회 인턴들이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데 대해선 인턴 한 사람이 12개월 이상 계속 근로할 수 있고, 이 경우 국회사무처는 퇴직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2012년에 124명, 2013년 96명, 2014년 130명의 인턴에게 퇴직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턴이라는 명목으로 수년씩 같은 곳에서 일하는 청년 인력 문제를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다고 하는 논리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특히 앞선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수의 인턴들은 11개월이 지나면 1개월을 건너뛰는 방식으로 다시 계약을 맺는 것이 현실이고 또 슈퍼을의 입장에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고용을 반복하는 인턴들을 '국회의원 보좌진의 인력규모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고용이 인턴이라는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법의 소지까지 있다고 조언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자인 국회가 인력 운용을 이렇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고용 구조개선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비용을 줄이고 경직성을 유연성으로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라 좀 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노동시장의 질서를 만들어나가자는 겁니다.  국회 내부의 노동시장도 좀 더 투명하고 객관적이고 모범적이고 법을 준수하는 그런 노동시장을 만들어줘야 이를 모범으로 해서 일반 민간 시장에 있어서의 노동 인력구조도 투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입만 열면 청년 일자리 보호를 외치는, 그것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이렇게 청년들을 수년씩 인턴의 굴레에 묶어두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국회의원들이 일반 기업에 청년 고용을 주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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