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가사노동은 만악의 근원? 자기 집에서부터 달라진다면…

[취재파일] 가사노동은 만악의 근원? 자기 집에서부터 달라진다면…
'아비규환'은 불교의 팔열지옥 중 아비와 규환지옥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특히 아비지옥은 '쉴 틈 없는 고통'이 큰 특징이라, '무간지옥'이라고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벌을 받는데 이 간은 계속 재생된다. 독수리는 매일 찾아오고 똑같은 강도의 고통이 매일 되풀이된다.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시시포스는 언덕 위로 다 올리면 돌이 굴러떨어진다. 처음부터 다시, 상징이자 비유겠으나, 공통점은 지속성과 반복성이다. 가사노동의 특성도 그러하다.

누구는 가사노동을 "모두 원위치시키는 노동"이라고 했다던데 요리와 육아를 제하면 대체로 맞는 말 같다. 청소든 빨래든 막 끝낸 그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며칠, 몇주가 지나 다시 그 일을 한다. '제대로' 하려면 한도 끝도 없어 보인다. 가장 하기 싫은 가사일은 청소인데 온 집안을 뒤엎고 할 게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한다.

● 가사노동은 만악의 근원?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가사노동은 만악의 근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식이다. 출산율이 수년째 바닥이다. 문제다. 전업주부는 그렇다치더라도 맞벌이 가정에서도 대개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한다. 퇴근하면 가사노동현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절대 노동시간이 많으니 힘들다. 그렇게 힘들 게 하는 가사노동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진 못한다. 특히 육아는 잠을 줄여서 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직장 있는 시간에도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가사에 신경써야 할 상황이 많다. 퇴근 뒤 이어지는 회식이나 초과 근로도 부담스럽다. 도저히 두 가지를(일과 가정) 병립하기 힘든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그래서 직장을 관두기도 한다.(경력 단절) 가사도우미나 육아도우미를 써야만 한다. 비용 만만찮고 마땅한 사람 구하기 어렵다. 가장 어려운 건 육아, 그래서 아이를 하나만 낳거나 아니면 낳지 않는다. 저출산이다. 출산율은 수년째 바닥, 이를 악으로 규정한다면 계속 그러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사노동에 이른다. 만악은 좀 과장이더라도 저출산이라는 '악'의 근원이 가사노동 아닐까.

● 37분과 200분이라는 차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통계청 조사다.

통계청에서는 국민 개개인이 24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생활시간'을 1999년부터 5년에 한번씩 조사하고 있다. 가사노동을 가정관리와 가족 보살피기로 나눠 좀더 정밀하게 조사한 2004년과 2009년을 보면 (2014년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맞벌이 남성의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32분에서 37분으로 5분이 늘었다. 맞벌이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208분에서 200분으로 8분이 줄었다. 비맞벌이 가구는(이 경우는 남성이 임금노동에 종사하고 여성은 전업주부로 한정한 듯하다.) 2004년엔 남성 31분, 여성 385분이었고 2009년엔 남성 39분, 여성 378분이었다. 비맞벌이에서도 남성은 8분 늘었고 여성은 7분 줄었다.

무슨 의미일까. 남성은 맞벌이든 비맞벌이든 간에 하루 평균 40분 정도만 가사노동을 했다는 것이다. 여성은 역시 맞벌이든 비맞벌이든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가사노동을 했다는 것이다. 2014년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크게 달라졌으리라 기대한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지만.
취재파일


이러면 맞벌이 여성의 절대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법정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인 만큼 하루에 8시간씩 일한다고 치자. 2009년 기준으로, 맞벌이 여성은 직장 노동 8시간에, 가사노동 3시간 20분을 합치면 11시간 20분을 일하는 셈이다. 맞벌이 남성은 직장 노동 8시간에, 가사노동 37분을 합치면 8시간 37분을 일하는 셈이다. 비맞벌이 여성은 6시간 18분, 비맞벌이 남성은 8시간 39분. 즉, 맞벌이 여성은 그 나머지 중에 가장 많이 일하는 비맞벌이 남성보다도 2시간 40분이나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선뜻 믿기지 않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여성보다 남성의 평균 노동시간이 길다는 점에서 이를 반박할 수 있다. 즉, 직장노동 8시간이 아니라 더 길다는 것이다. 아마 그러할 것이다. 또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보다 높다.(평균 임금 수준도 낮다.) 그래서 노동시간이 더 짧다는 것, 맞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맞벌이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 부담이라는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37분 대 200분, 가사노동을 5배나 적게 할 정도로 남성이 더 많이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 해법이 있을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남성의 평균 노동시간이 길어(남자도 힘들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 있다. 그렇기에 직장에서의 초과 근로, 연장 근로를 줄이고 업무시간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제안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법정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근로 행태가 굳어져 있는 기업과 현장에서 '근로 문화'를 개선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남들처럼 9시 출근해 6시 퇴근하지 말자며 7시 출근, 4시 퇴근을 주창했던 어떤 기업은 출근만 빨라지고 퇴근은 그대로 혹은 더 늦어졌다는, 농담 아닌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남성의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그만큼 가사노동을 더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가사노동은 재생산과 재충전을 위해 꼭 필요한 노동이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식을 바꾸자는 아름다운 말씀도 있다. '가사노동의 전담자는 여성'이라는 인식에는 남성은 가사노동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전근대적인 인식도 깔려 있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들이 있겠으나 그중에 가사노동은 들어있지 않다는 건 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 같다. 아빠도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게 아이 성장에도 바람직하고 "육아하는 아빠는 멋지고 쿨한 아빠", 이런 식의 인식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여러 방송사의 육아 예능은 주로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기' 이런 식이고 호평받고 있다. '요리하는 남자' 또한 그런 대열에 들어선 것 같다. 청소, 빨래, 설거지 등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데는 깊이 공감한다. 남성 육아휴직이 드문 현상이 아니라 좀더 확산될 필요도 있다.

"퇴근은 제2의 출근"이라는 맞벌이 여성들의 하소연, 이 기사에 댓글을 달았던("나는 집에 오면 가사노동 많이 한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만 들고 있다" "통계가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을 모르는 걸 보니 이 기자는 미혼일 것이다" "남성과 여성 싸움 붙이지 마라") 많은, 깨어있는 남성들이 자기 집에서부터 실천하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 퇴근은 제2의 출근…하루하루 고달픈 맞벌이 여성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