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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오바마 대통령 국정연설 현장에서…

[월드리포트] 오바마 대통령 국정연설 현장에서…
저녁 7시 의사당 본회의장 주변 갤러리가 바글바글하다. 미디어 갤러리다. 취재진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새 꽉 찼다.
이성철특파원 취파사
누구는 노트북을 펴 놓고 누구는 사진기를 들고 누구는 전화통을 붙잡고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했다. 보안 요원의 요청으로 잠시 복도로 나가야 했다. 폭발물 탐지견 두 마리가 투입됐다.
 
'소투(SOTU)' -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이 있는 날이다. 'State of the Union' 한 마디로 연방 정부의 현 상황을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민과 의회에 보고하는 연설이다. 나무 문틀 유리창 안으로 본회의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상, 하원 의원들도 벌써 여러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메시지를 갖고 의사당 연단에 설까? 폴리티코와 더 힐(The Hill), 롤 콜(Roll Call) 같은 정치전문지들은 일제히 SOTU 특집호를 내고 밤에 있을 일합을 전망했다.
 
집권 2기 후반기로 접어든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벌써 6번 째 무대다. 새로울 것도 없다. 공화당이 상, 하원을 모두 차지한 '호랑이 소굴'로 걸어 들어간다는 게 다르면 다르다.
 
그런데, 오바마는 당찬 모습이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진 게 '오바마의 참패'라고 낙인찍힌 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류가 다르다. 더 이상 질 선거도, 잃을 것도 없는 오바마는 자신의 일정대로 어젠다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주 사이버 안보 로드쇼에 나선데 이어 ‘부자 증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고소득층에 세금을 더 매겨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복지사각지대에 쓰겠다는 계산이다. 며칠 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를 찾아서는 최소한의 유급 병가를 약속했다.
 
'미국의 병자'와도 같던 오바마의 지지율은 기적적으로 소생하고 있다. 조사 기관에 따라 들쭉날쭉 이기는 하지만 abc뉴스-워싱턴 포스트 조사에서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재선 뒤 최고 지지율이다.
 
이성철특파원 취파사
저녁 8시다. 연설 시작 1시간 전이다. 잠시 가운데로 모이란다. 취재진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인가받은 사진기자 외에는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미디어 갤러리에 열기가 가득하다. 이제 설자리가 없을 정도다.
 
사실 오바마가 기세등등한 건 경제 덕이 크다. 견조한 성장률에 취임 초 위기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여기에 유가가 떨어지면서 서민들 주머니 사정도 나아졌다. 그러면 공화당은? 공화당은 자신들이 상, 하원을 다 차지한데 대한 기대감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는데 민주당은 코웃음을 친다.
 
8시 27분. 의회 채널인 C-SPAN을 통해 경호 차량의 모습이 비쳤다. 검정색 승용차가 도착했다. 의사당 안으로 얼굴을 알 만한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방청석에 자리를 잡았다. 존 케리 국무, 척 헤이글 국방, 에릭 홀더 법무장관 등 각료,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서맨사 파워 주 유엔 대사도 차례로 입장했다. 오늘 행정부를 지킨 당번은 교통장관이란다.
 
9시부터 5분간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주인공 오바마 대통령이 입장했다. 악수하고 포옹하고 볼에 키스를 하고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 걸음 한 걸음 연단으로 향했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취파
 
오바마 대통령은 역시 경제를 먼저 꺼내들었다. 위기의 그늘은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미국민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산층 경제론(middle-class economics)이다. 육아에서 대학 교육, 보건, 주택, 은퇴 후까지 국민들이 누릴 것은 누리도록 돕자는 얘기다.
 
그 길은 흔히 말하는 '부자 증세'에 있다. 최상위 1%가 축적한 부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함으로써 불평등을 초래하는 구멍은 막자는 것이다. 부자라서 세금을 더 내라는 게 아니라 부자임에도 온당치 못한 혜택으로 그동안 내지 않던 세금을 앞으로는 정정당당히 내라는 뜻이다.
취파
취파
 
오바마 대통령은 그 특유의 웅변 실력을 발휘했고,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상원의장을 겸한 바이든 부통령이 주로 기립 박수를 유도했는데 옆에 앉은 베이너 하원의장은 특유의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외교 문제는 역시 후반부를 차지했다. 최고사령관으로서 자신의 1차적 의무는 미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군사와 외교를 결합한 '더 스마트한(smarter)' 미국의 리더십을 믿는다고 했다.
 
파리 테러를 언급했고 ISIL,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이란을 거론했다. 그리고,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큰 비중을 뒀다. 쿠바 얘기를 꺼내자 의원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쿠바에 붙잡혔다 풀려난 앨런 그로스가 방청석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한반도는?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들리지 않는다. '사우스 코리아'도, '노스 코리아'도, '코리안 페닌슐라'도 들리지 않는다.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도 한반도 문제는 뒷전인가보다.
 
"어떤 나라도, 어떤 해커도 우리의 네트워크를 망가뜨리도록 둬선 안 됩니다. 무역 비밀을 훔쳐가게 해도 안 되고 미국의 가정과 특히 아이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이버 위협에 대한 대처를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을 거론하지 않은 게 그나마 배려라면 배려일까? 또 북한 정권의 잔혹성이나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게 차라리 외교의 여지를 남긴 걸까?
 
이성철특파원 취파사
1시간이 지났다. 연설이 끝나갈 무렵 본회의장 밖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취재진이 말 그대로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다들 기사를 송고하고 사진을 보내느라 바쁘다. CNN의 의회 담당 여기자인 대나 배시도 분주한 모습이다.
 
이성철특파원 취파사
잠시 뒤 의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연설이 끝난 모양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각료들은 다른 출구로 나갔다. 기자들은 국정 연설을 어떻게 봤느냐며 의원들의 반응을 묻기 바빴다. 의원들은 줄을 서서 방송 인터뷰에 응했다.
 
공화당은 아이오와 출신의 초선 여성 상원의원 조니 언스트를 내세워 대응 연설을 했다.
 
중산층 살리기, 상위 1% 증세를 화두로 던진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미국민들은 어떻게 봤을까? 곧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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