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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서부의 황야에도 룰은 있어야"…사이버 보안관 자청한 오바마

[월드리포트] "서부의 황야에도 룰은 있어야"…사이버 보안관 자청한 오바마
지난 월요일 낮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데 트위터로 지도 같은 것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에 띄었다. 짧은 텍스트만 들어오고 논문이나 그래픽, 영상은 링크를 거는 것이 보통인데 이상했다. 중국 지도가 떠 있었다. 한반도 지도도 눈에 띄었다. '한반도 시나리오'란 제목으로 군사 작전 내용이 담겼다.
 
잠시 뒤 구글 뉴스 사이트가 달아올랐다. 해킹 사건이었다. 미군 중부사령부 센트콤(CENTCOM)의 트위터와 유튜브 계정이 털렸단다. 센트콤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무장 세력 IS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무력화하는 (degrade and ultimately destroy)" 군사 작전을 수행 중이다. IS 지지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유출된' 자료는 미군 비밀 자료가 아니라 과학자 연구 모임 사이트에 게시된 공개 자료로 판명 났다.
 
시점이 묘했다. 해커들이 조롱하듯 택한 것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주마가편(走馬加鞭) 격이었다. 중부사령부의 트위터 계정이 털린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이버 보안과 안보 문제를 안고 달리기 시작할 때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영화사 해킹사건 뒤 사이버 세계가 '서부의 황야(Wild West)'와도 같다며 인터넷과 사이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규범을 세울 때라고 역설했는데, 이 문제를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국 정상들이 앞장선 프랑스 파리의 테러 규탄 행진에도 참가하지 않고 주말 이틀간 두문불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미국 대통령으로는 거의 80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거래위원회(FTC)를 방문했다. 1937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처음이었다. 소비자 보호와 공정 거래 촉진을 임무로 하는 기관이다.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사이버 정보 보호를 역설했다. 해킹 사건이 일어날 경우 기업체들은 30일 안에 반드시 소비자들에게 알릴 것을 주문했다.
 
'학생정보보호법' 제정을 제안한다며 교실에서 수집된 학생들에 관한 정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목적으로만 쓰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 정보를 돈벌이에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다.
 
"학생들에 관한 데이터를 교육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제 3자에게 팔아먹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특정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데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정보 수집과 축적(profiling)도 차단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사이버 범죄에 철퇴를 가할 수 있도록 약칭 '리코(RICO)' 법 같은 일련의 법 개정을 제안했다.
 
다음날 화요일 아침엔 백악관으로 여야 의회 지도부를 초청했다. 대통령 왼쪽엔 존 베이너 하원의장, 오른쪽엔 상원 다수당 대표에 오른 미치 매코넬이 앉았다. 상원 선거에서 지고 얼굴까지 다친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 대표를 빼고 의회 지도부가 오바마 대통령과 머리를 맞댔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영화사 사건과 전날 중부사령부 트위터 해킹을 화두로 던지며 입법부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리고는 NCCIC라는 곳으로 달려갔다. '엔킥'이라고 읽는다. '국가 사이버 통신 통합 센터(National Cyber and Communications Integration Center)'라는 국토안보부 산하 기관이다.
 
세계 사이버 활동을 감시하고 중요 국가 인프라를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관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가동된다. 국가정보국(NSA)같은 첩보기관은 다른 비밀스런 루트와 특수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이버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겠지만, '엔킥'은 공개적인 사이버 감시 기관으로는 최고사령부가 아닌가 싶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사이버 현황을 나타낸 지도 앞에 섰다. 제이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도 옆에 섰다. 바로 어제 군 트위터와 유튜브가 해킹을 당했다며 비밀 정보가 유출된 것 같지는 않지만 사이버 위협이 얼마나 시급하고 커가는 위험인지 역설했다.
 
"기본적으로 사이버 범죄자들이 미국 사법 체계의 위력을 느끼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전통적 범죄 못지않은 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진은 계속됐다. 수요일엔 중부 아이오와의 세다 폴스라는 곳으로 날아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 배경은 이번엔 전통 공구들 - 아날로그다. 그런데 왜 세다 폴스일까? 전 주민과 기업체들이 초고속 인터넷 망에 연결돼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공구들을 배경으로 지난해 일자리가 늘었다고 힘을 줬지만 동시에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역설했다. 다른 지역들도 세다 폴스처럼 해 보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초점인 사이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창출하려고 하는 일자리의 다수는 디지털 경제에 달려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 안에서 연결하고 쇼핑하고 발견하고 배우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오바마의 사이버 행진은 금요일 미-영 정상회담에서 절정에 달했다. 파리 테러 사건과 이란 핵 문제 등 글로벌 현안들이 줄을 섰지만 사이버 안보 문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두 나라 정보기관이 공동으로 해킹에 대응해 워 게임을 실시한다는데 합의했다. 공동 '사이버 조직(cyber cell)'도 만들기로 했다. 영국에서 국가안보 정보기관인 M15과 GCHQ가, 미국에서 국가안보국 NSA와 연방수사국 FBI가 나선다.
 
뉴욕 월스트리트와 런던 시내 금융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상정한 훈련이 첫 과제다. 금융 기관에 대한 사이버 대응 훈련은 이미 실시되고 있지만, 미영 두 나라가 협력해서 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게 영국 당국의 설명이다. 때맞춰 영국은 첼튼햄에 위치한 GCHQ 내부를 사상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앞서 에드워드 스노든은 GCHQ가 2009년 영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였다고 폭로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NSA도 불법 인터넷 도감청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잇단 해킹 사건을 계기로 기지개를 켜게 됐다. 이를 의식한 듯 오바마 대통령도 사이버 안보 강화에 단서를 달았다.
 
"사이버 세계에서 정부가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그러한 능력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일관된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이버 안보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올해 신년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누가 레임덕이 일찍 올 것이라 했는가? 하와이에서 골프를 치며 긴 겨울 휴가를 즐기면서도 '사이버'라는 어젠다를 잡고 숨 가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놀랍다. 소니영화사 해킹 사건이 미칠 파장의 크기가 이렇게 클 줄 해커들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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