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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뉴스브리핑]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

‘섬진강 시인’ 김용택,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다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3시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3시 뉴스브리핑> 월~금 (15:00~16:3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김용택 시인

“자연에서 나고 자라 서정성이 짙은 시를 많이 썼다”
“농부들은 헛말·헛짓 안 해…시에도 진실된 일상 속의 언어를 택해”
“‘시인’이라는 말, 아직도 쑥스럽고 어색해”
“아이들은 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봐…감탄과 감동을 전해”
“삶을 살아온 그 자체가 ‘시’다”
“생각을 쓰다 보면 절절한 것이 시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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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김용택 시인 나오셨습니다.
 
▶ 김용택/시인: 네. 안녕하세요.
 
▷ 주영진/앵커: 어떻게 오늘 섬진강에서 오신 겁니까?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서울까지는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 김용택/시인: 저희 집에서 전주까지 한 40분. 고속버스 타면 한 3시간 정도 걸립니다.
 
▷ 주영진/앵커: 네. 평생을 그러면 섬진강 언저리에서 이렇게 사신 건가요?
 
▶ 김용택/시인: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거기고 또 직장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한 50분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있거든요. 거기를 졸업하고 이제 거기서 또 교사를 했기 때문에 평생 그렇게 섬진강 강가에 살았다고 보죠.
 
▷ 주영진/앵커: 그래서 시집 저희 기억에 아마 저희 또래들이 기억하는 시집은 ‘섬진강’이라는 제목의 시집이에요? 맞죠?

▶ 김용택/시인: 그렇죠. 네.
 
▷ 주영진/앵커: 그게 나온 때가 언제입니까?
 
▶ 김용택/시인: 1986년 정도에 나왔을 겁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이제 막 대학 들어갈 그때쯤인데 ‘섬진강’이라는 시집 안에 ‘섬진강’이라는 제목의 시가 몇 개나 실렸습니까?
 
▶ 김용택/시인: 연작인데 섬진강이 연작시였거든요. ‘섬진강’ 시집 속에도 실려있었고 그 다음에 냈던 ‘맑은날’ 시집 속에서도 ‘섬진강’ 연작이 실려있었습니다. 그래서 24편 정도가 되죠.
 
▷ 주영진/앵커: 24편?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24편의 ‘섬진강’ 시. 그 중에 기억나는 구절이 혹시 있으십니까?
 
▶ 김용택/시인: 다 기억은 나는데 제가 외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 주영진/앵커: 시인도 자기가 쓴 시 다 기억은 못하시는군요?
 
▶ 김용택/시인: 시인들이 아마 자기가 쓴 시를 외울 수는 없을 거예요. 보고 읽을 수는 있을 텐데.
 
▷ 주영진/앵커: 최근에 우리 김용택 시인께서 3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내셨다고 하는데 보니까 제목이 제가 지금 들고 있습니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울고 들어온 너에게’ 이 시집의 제목은 어떤 의미입니까?
 
▶ 김용택/시인: 그냥 사실은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제목을 정하고 이럴 때 뭐 어떤 커다란 의미가 없고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정하게 되죠. 시를 써놓고 나서 보면 제목을 무엇으로 붙일까? 생각하다가 그냥 제목을 붙이는데 읽는 분들이 시를 읽으면서 느낌을 말할 때 시인도 아 그렇게 썼는가?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죠.
 
▷ 주영진/앵커: 시를 오랫동안 써오시고 ‘섬진강’이라는 시부터 최근 시를 보면 선생님의 시는 어떤 사회 참여. 사회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사람, 삶 또 사랑 이런 것에 대한 어떤 천착, 관심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습니까?
 
▶ 김용택/시인: 초기에는 80년대를 우리가 다 겪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 통일이라든가 또는 사회의식이라든가 이런 저항시도 많이 쓰기도 하고 그랬죠.
 
▷ 주영진/앵커: 저항시도 쓰셨고?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고 제 주변의 친구들도 우리 김 선생님의 시를 참 좋아했는데 기억나는 시들은 대부분 연시 같은 느낌.
 
▶ 김용택/시인: 그렇죠.
 
▷ 주영진/앵커: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시. 제가 기억나는 구절만 해도 ‘밤꽃 피는 유월에’ 인가요. 너 잠못 들어 뒤척이는 날이면 나 또한 네쪽으로 돌아누운 줄 알거라.
 
▶ 김용택/시인: 그 시를 아시네요.
 
▷ 주영진/앵커: 네. 이런 시구절을 아마 연애편지에다가도 많이 인용을 했을 거예요?

▶ 김용택/시인: 서정성이 짙은 제가 자연 속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서정성이 짙은 글들을 많이 썼죠.
 
▷ 주영진/앵커: 자연과 또 어머님이 주신 어머님도 영향을 미친 건가요?

▶ 김용택/시인: 그렇죠. 어머님이 농사를 짓고 사시는 분들은 사실은 헛소리를 안 해요. 헛짓을 안 하고 헛소리를 안 합니다. 예를 들어서 괭이질을 할 때 헛 한 번 해보는 것은 없어요.
 
▷ 주영진/앵커: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은 절대 헛짓을 안 하신다?
 
▶ 김용택/시인: 헛짓을 안 하고 헛말을 안 해요.
 
▷ 주영진/앵커: 헛말도 안 하시고?
 
▶ 김용택/시인: 그러니까 농사 속에서 나오는 말을 표현하기 때문에 헛말이 없고 헛짓을 안 해요. 그런 분들의 말을 제가 많이 받아적은 편이죠.
 
▷ 주영진/앵커: 그래서 선생님 시를 읽으면 정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 김용택/시인: 삶 속에서 나온 말들을 쓰게 되죠.
 
▷ 주영진/앵커: 얼마 전에 소리꾼 장사익 선생님이 이 자리에 나오셨는데 그때 제가 이런 저런 얘기하다 봤더니 김용택 선생님 시에다가 곡을 붙인 노래를 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 김용택/시인: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떤 노래인가요? 바로 이 노래 같은데.
 
▶ 김용택/시인: 네. ‘이게 아닌데’인데 사실은 장사익 선생께서 제 시 본래 제목은 ‘그랬다지요’에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살다가 보면 이렇게 살았어야 되는데 그냥 그렇게 산 거죠. 뭐 그런 이야기죠.
 
▷ 주영진/앵커: 시 제목을 장사익 선생님이 그냥 바꾸신 겁니까?

▶ 김용택/시인: 자기가 아마 그렇게. 그게 노래 제목으로는 좋았던 모양이죠.
 
▷ 주영진/앵커: 그래서 시원하게 허락하신 겁니까?
 
▶ 김용택/시인: 그렇죠.
 
▷ 주영진/앵커: 아니 왜 내 시 제목은 ‘그랬다지요’인데 왜 이렇게 바꿨느냐?
 
▶ 김용택/시인: 근데 사실은 그걸 제가 몰랐어요. 나중에 시를 보니까 제 시 제목을 그렇게 바꿔서 노래를 만들었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어쨌든 두 분 사이는 친하시고 다?
 
▶ 김용택/시인: 저하고 나이가 같은 줄 알았는데 저보다 나이가 1살 아래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장사익 선생이 지난번에 나와서 그 얘기는 안 하시더라고요.
 
▶ 김용택/시인: 장사익 선생님이 제가 초등학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저를 어린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을 해서. 네.
 
▷ 주영진/앵커: 어린 영혼을 가진 분으로?
 
▶ 김용택/시인: 네. 그래서 굉장히 보호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 주영진/앵커: 이렇게 우리 김용택 선생님의 시는 노래로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의 삶을 노래하고 참 그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습니다. 최근에 처음 나왔던 영상을 보면 8년 만에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왔다, 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 김용택/시인: 제가 오랫동안 제 모교에서 초등교사를 오래 하다가 퇴직을 했는데 강연이 많았어요. 강연이 많아서 이제 제가 강연을 다니려면 전주가 가장 거리상 좋아요. 그래서 전주에 식구들이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주로 가서 살다가 이제 8년 쯤 됐는데 올 4월 달에 다시 시골로 집을 지어서 갔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제는 그야말로 시하고 글 쓰시는 데에다가 전력투구하시는 겁니까? 물론 강연 요청이야 계속 들어올 테고.
 
▶ 김용택/시인: 제가 시인 그러면 저는 아직도 좀 쑥스럽고 어색해요. 그냥 작은 마을인데 12가구 정도 사는 마을인데
 
▷ 주영진/앵커: 지금 화면에 나오는 이 동네죠?
 
▶ 김용택/시인: 네. 저게 지금 제 집 제가 새로
 
▷ 주영진/앵커: 저기 구경하러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 김용택/시인: 많아요. 집이 좀 근사하네요. 사진을 보니까.
 
▷ 주영진/앵커: 아니, 원래 보통 예술인들 돌아가신 분들 집에 관광객들이 가는 것은 있습니다만 아직도 김용택 시인도 한참 활동하고 계신데 저렇게 집에 많은 분들이 몰려오시면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아니면 오히려 반가우세요?
 
▶ 김용택/시인: 토요일 날, 일요일 날은 정기적으로 버스가 전주 한옥마을에서 저를 찾아옵니다. 1대. 그때는 저를 찾아오시는 분들하고 같이 놀아주고 평일에도 단체로 오신 분들이 있으면 제가 집에 있을 때 같이 앉아서 산 이야기, 강 이야기, 농사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 하고 뭐 놀죠.
 
▷ 주영진/앵커: 초등학교 교사를 오래 하셨죠?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아이들이 쓴 시. 제가 예전에 선생님 글들을 읽어본 기억이 나는데 아이들한테 많이 배운다 아이들 시에서. 이런 얘기도 하신 기억이 나는데 어떻습니까? 정말 동심이 바라보는 세상 그것이 우리 김 선생님이 바라보는 세상과 비슷한가요?
 
▶ 김용택/시인: 사실은 교육이라는 것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더라고요. 가르치다보면 내가 배우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교육은 자기 교육이죠. 근데 아이들한테 많은 것을 배웠는데 아이들은 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봐요. 모든 게 새것인 거죠. 새로워요. 새롭다 보니까 굉장히 신비롭고 신비롭다 보니까 감동적이에요. 애들은 감동을 줘요. 감탄과 감동을 줘요. 감탄과 감동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줍니다. 그래서 시를 내가 공부한 것보다 아이들하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배운 게 늘 늙지 않고 늘 새로운 면을 찾는 그런 어떤 삶의 신비로움을 배웠죠.
 
▷ 주영진/앵커: 최근에 제가 오늘 선생님 나오신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본 시가 하나 있습니다. 이 시를 보시고 얘기를 이어갈게요. 어떤 시냐고 하면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오시다가 늘그막에 한글을 깨우치신 할머니들이 쓰신 시입니다. 지금 나오는 겁니다. 어린 시절 내 동생 공부 시키려고 나는 글을 못 배웠네 젊어서는 눈치로 살았네 자식 낳고 살면서 글을 못 배운 것이 후회 되어 60 중반 돼서야 글을 배우게 되었네. 또 옆에 있는 참 좋은 아침이라는 시도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못해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를 원망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책가방을 메고 친구와 학교에 간다 이제 참 좋은 아침이다. 이것도 정말 선생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시죠?
 
▶ 김용택/시인: 그렇죠. 시라는 게 우리가 꼭 어떤 시인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쓴 시가 있기도 하지만 시인들은 그렇게 시를 쓰지만 현실 속에서 삶을 잘 살아간 사람들은 삶의 내용을 쓰기 때문에 사실은 그게 이제 더 절실하고 절절하고 사람들한테 호소력이 있죠.
 
▷ 주영진/앵커: 사실 요즘 우리 입시에 시달리는 어린 학생들부터 또 취업 걱정에 시달리는 20대 또 생업 때문에 바쁘게 살아가야 되는 3,40대 50대 직장인들 그리고 또 은퇴하신 분들 모두가 아마 늘 마음 속에 나도 시처럼 살고 싶다 시를 쓰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이 있을 거예요.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시집 하나 꺼내서 읽고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시라고 하는 게 어떻게 그냥 쓰면 시가 됩니까? 어떻습니까?
 
▶ 김용택/시인: 사실은 시가 중요한 게 아니고 시라는 게 생각을 쓰게 되거든요. 모든 게 글이라는 게 생각을 쓰게 되는데 생각을 쓰다 보면 시가 되기도 하고 소설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시를 쓰려고 하면 시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시를 쓰려고 하지 말고 생각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절실하고 절절하기 때문에 그게 사실은 시가 될 수도 있죠.
 
▷ 주영진/앵커: 네. 시를 그러면 그냥 생각을 정리하는데 저희가 배울 때는 시는 간결해야 하고 길면 안 되고 물론 만연체라는 것도 있습니다마는 어떻습니까? 그래서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 김용택/시인: 시라는 게 이게 그냥 어느 날 아침에 뭐 한 1,2년 시를 공부해서 쓴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죠. 시라는 게 오랜 세월 필요한데 시를 처음부터 쓰려고 하면 안 된다, 그 얘기죠.
 
▷ 주영진/앵커: 그렇습니까?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앞으로 지금도 시집은 내놓으셨습니다만 오늘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 등단 50주년 기념해서 신문에 인터뷰난 것을 봤더니 평생을 난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김용택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 마찬가지로 평생 시를 쓰면서 저희한테 좋은 시 계속 선물해주실 건가요?
 
▶ 김용택/시인: 글쎄요. 제가 살다보면 글이 써지겠죠. 저는 뭐 어떤 계획을 별로 세운 적도 없고 늘 저는 지금이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이 좋은 사람이요?
 
▶ 김용택/시인: 네.
 
▷ 주영진/앵커: 김용택 선생님이 3시 뉴스브리핑 찾아주신 김에 제가 좀 어려운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제 시청자 분들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요. 인사드리고 나면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께 김용택 선생님이 시낭송 선물 좀 해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10월의 멋진 목요일이 될 수 있도록 기억나는 오후가 될 수 있도록 시낭송 해주시고요.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용택/시인: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먼저 인사하고 나서 한 번 시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용택/시인: (시낭송) 그 동안 - 김용택 지음. 농부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살았다 글을 썼다 쓴 글 모아보았다 꼬막 껍데기 반에 반도 차지 않았다 회환이 어찌 없었겠는가 힘들 때는 혼자 울면서 말했다 울기 싫다고 그렇다고 궂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다 살았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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