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르기 위해 더 할 건 없다." (조제 무리뉴 감독)
"무리뉴 감독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팀이 손흥민을 탐낼 것이다" (게리 네빌)
이런 평가를 가장 불편해할 사람은 손흥민,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한 경기에서 4골을 몰아넣고도 "어시스트해 준 해리 케인에게 고맙다", 승리의 주역이란 평가엔 "팀이 이긴 게 중요하다. 선수 모두가 주역이다"라고 답하는 겸손한 선수니까요. 특별한 기록을 세운 날조차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길 자격이 있다'며 공을 돌리기 일쑤입니다. 앞서 아버지 손웅정 씨는 "흥민이는 절대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고 했죠. "지금 주어진 것은 젊은 시절 하늘이 잠깐 허락한 기적 같은 기회"라며 "은퇴하는 날까지 겸손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몸에 밴 겸손은 손흥민이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됐을 겁니다. 좀처럼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결과입니다.
한편으론 이렇게 스스로 낮추지 않았다면 보다 높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 "내가 얼마나 완벽한지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는 와인(wine)같은 선수다"라면서 종종 스스로 신격화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AC밀란)처럼 말이죠.
● 유럽 통계회사 손흥민의 '결정력'을 계산하다
반가운 사실은 손흥민이 즐라탄처럼 으스대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손흥민이 '월드클래스'라는 지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력은 유럽 최고입니다.
유럽 통계 업체들은 축구선수의 '결정력'을 객관화하는 지표를 연구해왔습니다. 영국 통계회사 옵타(OPTA)가 개발한 '결정력 지수'가 대표적입니다. 특정 선수가 평균적인 선수보다 얼마나 많은 골을 넣었는지 비교한 수치입니다.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정교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옵타는 인공지능으로 30만 건이 넘는 슛 장면을 낱낱이 들여다봤습니다. 이를 통해 슛을 하는 순간 ▶골대와 거리 ▶각도 ▶수비 위치 등을 변수로 득점 확률을 계산합니다.
# 옵타(OPTA) '결정력 지수' 관련 영상 보기
모든 슛 장면에서 이 확률을 계산해 더한 값이 기대 득점(expected goal·xG)입니다. 기대 득점이 높았다는 건 그만큼 득점 기회를 많이 잡았다는 얘기입니다. 이른바 '골 냄새'를 잘 맡는 선수라는 거죠. 기대 득점에 따라 얼마나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는지, 반대로 얼마나 어려운 골을 넣었는지 추산할 수 있습니다. 옵타는 실제 득점과 기대 득점의 차를 계산해 결정력 지수를 측정합니다.
● 손흥민의 결정력, 프리미어리그 최고…유럽 5대 리그 전체 2위
구체적인 사례로 분석해볼까요. 옵타는 손흥민의 결정력 지수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1위라고 밝혔습니다. 올 시즌 8골로 득점 선두에 오른 손흥민의 경우, 7경기에서 기대 득점은 2.72골에 불과했습니다. 평균적인 선수라면 손흥민과 똑같은 환경에서 3골을 넣기 어려웠을 거란 분석입니다. 마찬가지로 8골을 넣은 칼버트-르윈의 기대 득점은 5골이 넘습니다. 결정적인 기회는 손흥민보다 더 많이 잡았다는 뜻입니다. 똑같이 8골을 넣었더라도 손흥민의 결정력이 더 높았다는 근거입니다.
● 세계 랭킹 '21위' 손흥민, 호날두 제쳤다
그레이스노트는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하이퍼큐브사와 함께 세계 선수 지표(Global Player Index·GPI)를 내놓았습니다. 포지션을 통틀어 선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수치로 전 세계 고객 구단에만 공개하는 자료입니다. 구매한 팀들은 선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료로 활용합니다.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가 되는데, SBS가 입수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손흥민의 현재 랭킹은 세계 21위입니다.
● '저평가 우량주' 손흥민, 재평가 시작됐다
여전히 의심의 시선은 있을 수 있습니다. '경기력에 기복이 있다'거나 토트넘의 현재 경기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때 아직 부족하다고 말이죠. 하지만 손흥민처럼 지속적으로 발전한 선수는 없다고 통계 분석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옵타의 라이언 바히아 매니저는 "양발을 잘 쓰는 손흥민의 결정력은 데뷔 후 꾸준히 증가했다"며 "그의 시장 가치는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이 상승했다"고 말했습니다.
손흥민의 장기인 폭발적인 스피드도 내리막을 탄 적이 없습니다. 손흥민은 올 시즌 7경기에서 총 139회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4분에 한 번꼴로 달린 셈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90분 당 스프린트 횟수는 13회에서 23회로 77%가량 증가했습니다. 최고 속도도 지난해 6라운드 레스터시티전에서 기록한 시속 34.17km를 이미 사우스햄튼전(34.96km/h)에서 넘어섰습니다.
카터레트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손흥민의 시장 가치는 불과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토트넘과 재계약 협상이 본격화한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선수로 꼽히던 손흥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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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 김신규)
# 이정찬 기자의 손흥민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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