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의 노래 가사처럼 그야말로 '별일 없이 산다'.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일상은 무료하게 반복된다. 그런 패터슨에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상기시켜주는 것은 노트에 쌓이는 '시'(詩)다.
패터슨은 틈틈이 일상의 편린을 담은 시를 쓴다. 아침을 먹으면서 본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갑에 영감을 받아 사랑 시를 써 내려간다. 오늘은 밑그림을 그리고, 다음날은 운율과 리듬을 맞춘다. 그렇게 생각한 무언가를 쓰고, 또 쓰며 패터슨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극적인 사건도, 뚜렷한 메시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별 볼 일 없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합이 곧 영화의 사건이고 시간이 된다.
이야기는 반복 구조를 통해 전진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시간과 공간을 패턴화하며 패터슨의 삶을 보여준다. 이 일주일에 패터슨의 희로애락이 집약된다.
패터슨은 일정한 동선 안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여전히 펜으로 시를 쓰고,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은 아날로그형 인간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깊이 있는 교류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버스를 타고 내리는 손님들의 대화에 귀를 열어놓고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영화를 연출한 짐 자무쉬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시인을 꿈꿨다. '패터슨'에 언급된 프랭크 오하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실제로 감독이 흠모한 시인들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도 윌리엄스의 대표작에서 따왔다.
'천국보다 낯선', '데드맨', '지상의 밤', '커피와 담배' 등을 만든 짐 자무쉬는 일상의 디테일을 포착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남다른 재주를 발휘해왔다. 혹자는 그를 가리켜 '카메라로 시는 쓰는 감독'이라고 불렀다.
'패터슨'은 자무쉬가 작정하고 만든 영상 시다. 인생은 일상의 작은 점들의 합이라는 듯,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 줄 알았던 삶이 실상은 미세하게나마 변하고 있다는 것 그 미묘함이 시의 토대가 됨을 패터슨의 삶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동물에게도 인간의 영혼을 불어넣었다. 영화의 세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잉글리쉬 불독은 신묘한 연기로 온기와 생기, 웃음을 유발한다.
넬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불독은 2016년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에서 강아지 황금종려상인 팜도그((Palm Dog Award)'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제 개막전 사망했다.
패터슨은 격동의 일주일을 보낸 뒤 더이상 아침에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비로소 텅 빈 노트,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즐기게 된 것은 아닐까.
버스 운전사가 써 내려가는 시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패터슨'은 오랜만에 만나는 문학적인 영화다. 짐 자무쉬가 만들어낸 영화적 운율과 리듬은 물론 애덤 드라이버가 읊는 시구의 아름다움도 만끽하길 권한다. 상영 시간 118분, 12세 관람가.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