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이번에 발견된 문서의 내용에 있습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에 발견된 문서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내용이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좌편향 문제가 있다고 본 문화예술인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대통령과 비서실장 주재 회의 문서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는 겁니다.
오는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1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번 문서가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 이른바 '스모킹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 캐비닛에 이어 이번에는 공유 폴더…그것도 블랙리스트 내용이?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2015년 1월까지 작성된 회의 자료와 문서들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담당하던 제2부속실에서 쓰던 파일이었습니다. 파일은 직원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아닌 내부망에 연결된 여러 컴퓨터로 누구나 접속해 쓸 수 있는 '공유 폴더'에 저장돼 있었습니다. 대부분 한글 문서 파일 형태였고 암호가 걸려 있었습니다.
박 대변인은 "공유 폴더는 전임 정부부터 근무하던 일부 직원들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근무하며 참고·활용하기 위해 지속해 보관했고 해당 비서관실에서만 접근할 수 있게 설정됐다. 이런 이유로 문제의 문서 파일이 발견되기 전까지 대통령기록물과 무관한 것으로 알고 주목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큰 용량 때문에 살펴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문서를 살펴보던 중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내용을 발견해 알리게 됐다는 겁니다.
■ 새 블랙리스트 문서로 과녁에 놓인 두 사람…안봉근과 조윤선
안봉근 전 비서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사법 처리를 피해 간 몇 안 되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입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는 과정에서 최순실 씨의 청와대 출입을 관리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입니다. 안 전 비서관은 최씨의 청와대 출입을 방조하고 기밀문서를 취득하는 것을 묵인한 인물로 지목받았습니다.
최 씨의 휴대전화 액정을 옷으로 닦아 건네주는 영상이 담긴 화면이 공개돼 이목을 끌었던 이영선 전 경호관은 안 전 비서관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측근으로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법정 구속됐습니다. 최순실 씨에게 본인 명의의 대포폰을 제공한 윤전추 전 행정관도 안 전 비서관의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문서 파일의 발견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또 한 명의 인물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입니다. 문건 작성 시점이 조 전 장관이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재임하던 기간과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입니다.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구속 기소됐지만 지난달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문서의 존재를 조 전 장관이 재임 시기에 알고 있었다면 2심 재판에서 형이 무거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 블랙리스트와 박근혜의 연결 고리…'스모킹 건' 될까
가장 큰 관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에 이 문서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것입니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시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재판은 지난 18일 시작됐습니다. 앞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이 어느 정도까지 보고받았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혀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범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제2부속실 등을 통해 정무수석 시절부터 관련 내용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조 전 장관을 기소했던 특검을 비롯해 문화예술계에선 '조 전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할 때부터 블랙리스트의 전신인 '정무리스트'가 있었고 2016년 9월 문체부 장관에 취임하고 더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가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인정된다면 박 전 대통령에게도 블랙리스트 작성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가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관심은 이번 문서가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청와대의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고에 앞서 삼성 경영권 승계 문건을 검찰에 전달했습니다.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 막바지에는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던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이 복원돼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박영수 특검팀은 문서 파일 공개에 대한 소식이 알려진 뒤 "내용을 받아 본 후 검토해 보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검찰에서도 문서를 접수하는 대로 검토해 공소 유지에 적용할지 판단할 예정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 선고를 두고 초침이 빨라지는 모양새입니다.
(디자인: 임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