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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병우 앞에 선 법원, 왜 오해를 자초했을까?

[취재파일] 우병우 앞에 선 법원, 왜 오해를 자초했을까?
어제(12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조금 낯선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일정)

피의자: 우병우(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죄명: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2017. 12. 14. (목) 10:30
권순호 영장전담부장판사

● 관례보다 하루 미뤄진 영장심사 날짜…이유는?

특이한 부분은 영장심사 날짜였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세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짜는 지난 11일(월)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보통 영장이 청구된 날짜로부터 이틀 뒤에 구속영장 심사를 여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특이하게도 영장 청구 날짜 사흘 뒤에 심사를 연다고 공지한 것이었다. 기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을 예상했는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공보관(판사)은 선제적으로 설명을 보탰다..
 
[참고] 형사공보관 설명

* 영장사건 배당과 관련하여, 지난 번 우병우 피의자에 대하여 영장 청구 및 재청구되었던 사건은 이미 불구속 기소가 되었고, 이번 영장청구 건은 별개의 범죄사실에 관한 것이므로 일반적인 컴퓨터 배당에 따라 영장전담법관이 결정되었습니다.

* 기일 지정에 관해서는, 해당 영장전담법관이 오늘 전병헌 피의자 영장심문 진행 및 결정을 해야 하고, 내일도 다른 영장실질심사 사건이 적지 않아 기록 검토를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 12/14로 구속영장 실질심사 일정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설명은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 차례 기각한 적이 있는 권순호 영장전담부장판사가 이번 영장심사를 또 맡게 된 배경에 대한 내용이다. 법원 설명처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같은 피의자에 대해서 영장이 다시 청구될 경우, 앞서 영장 심사를 맡았던 담당 판사 대신 다른 영장 전담 판사가 심사를 맡는 것이 관례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앞서 기각된 영장 청구와는 다른 사건에 대한 것이다. 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전담 판사가 3명에 불과한데 우 전 수석의 영장이 세 번째로 청구되는 것이므로 때마다 다른 판사를 배당하기도 곤란한 면이 있을 것이다. 컴퓨터 배당으로 결정했다는 법원 설명이 수긍할만 했다.

그러나 영장심사 날짜가 14일로 지정된 배경에 대한 설명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심사 날짜가 하루 미뤄지는 것은 피의자와 변호인 입장에선 상당히 유리한 조치이다. 사전 수사를 통해 많은 자료를 확보해 영장심사에 임하는 검찰과 달리 피의자와 변호인은 구속영장 청구서 사본과 복사를 허락받은 약간의 기록 정도를 가지고 심사에 임하게 된다. 변론을 준비할 시간은 대부분 부족하다. 아마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의 모든 형사 사건 변호인들은 영장 심사 전에 하루라도 시간을 벌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쉽게 주어지는 혜택이 아니기 때문에 심지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영장 청구 날짜로부터 이틀 뒤에 구속영장 심사를 받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하루 더 여유를 얻었다.)

● 업무가 과중해서 하루 미뤘다?

법원의 설명은 만약 관례대로 영장 청구 날짜 이틀 뒤에 심사를 한다면, 권순호 영장전담부장판사가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영장을 심사한 뒤 다음날 바로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를 맡게 되니 부담스럽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 설명은 이상하다. 법원은 영장심사의 당사자가 현 정부의 청와대 수석 출신의 거물급 정치인이든, 아니면 배가 고파서 제과점에서 빵을 훔친 40대 가장이든 차별 없이 심사를 해야 한다. 전날 거물급 피의자에 대한 심사가 있으니, 다음 날 또 다른 거물에 대한 심사를 하기가 어렵다는 논리는 그동안 법원으로부터 한 번도 듣지 못한 주장이었다. 또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에게 매일 영장심사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고, 업무가 지나치게 과중하다는 것 역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굳이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 날짜를 미루면서 덧붙일만한 설명은 아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우병우 전 수석의 변호인이 법원에 영장심사 날짜를 미뤄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우병우 전 수석 측은 우병우 전 수석이 15일(금)에 다른 사건과 관련해 공판 출석이 예정돼 있고 변호인도 다른 의뢰인에 대한 사건이 많아서 이번 영장심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날짜를 연기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앞서 말했듯이 법원이 피의자의 건강이나 중요한 경조사(부친상/모친상 등)가 아니라 단순히 변호인의 변론 시간 부족을 이유로 날짜를 연기해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렇지만 법원은 실제로 날짜를 연기했다. 이에 대해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역시 우병우는 대단하긴 대단하다."라고 평했고, 한 판사는 "이례적이긴 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검찰 측에 요청해 구속영장 청구 날짜를 좀 미뤄달라는 경우는 봤지만, 법원에 변론시간이 부족하다고 영장심사를 미뤄달라고 하는 경우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우병우 측의 연기 요청 사실은 왜 알리지 않았을까?

문제는 법원이 기자들에게 우병우 전 수석 측이 날짜를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했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 입장에선 우 전 수석 측의 요청과 상관 없이 실제로 담당 법관의 업무 부담을 고려해서 날짜를 조정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우 전 수석 측의 연기 요청이 있었단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영장심사 날짜를 공지하면서 이례적인 기일 지정의 배경을 설명할 정도로, 관례보다 하루 기일을 연기하는 것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 전 수석 측의 연기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우병우 측 요청으로 하루 연기하는 특혜를 줬다.'라는 비판을 면하기 위함이 아닐까 합리적으로 의심된다. 더구나 법원 관계자는 우병우 전 수석 측의 연기 요청이 있었냐는 기자의 취재에 "원래 그런 건 담당 판사가 확인을 안 해주는 사안이라 확인불가다."라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그 동안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영장 발부가 우병우 전 수석 관련 영장과 관련해 유독 의혹의 대상이 돼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의 이번 조치는 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압수수색 영장 기각 등이 적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우병우 전 수석의 처가인 삼남개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사례다.

[단독] “족집게로 뽑아낸듯”…‘우병우 처가’ 삼남개발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 (한겨레, 2017년 11월 20일)

그 밖에 최근 우병우 전 수석의 휴대전화와 승용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 과정에 대해서도 검찰은 석연치 않다고 여기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서 이례적으로 빨리 처리해 달라고 법원 측에 요청까지 했는데, 법원에서 보통의 경우와 달리 하루 뒤에 영장을 내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법원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영장 발부에 뜸을 들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검찰은 왜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영장과 관련해서 (검찰이 보기에) 석연치 않은 일이 계속 이어지는지 의심하는 상황이다.

● 오해를 자초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속영장 발부도, 영장심사 날짜 지정도 모두 온전히 법원의 권한이다. 구속영장을 한 번을 기각하든, 두 번을 기각하든, 아니면 이번에도 기각해 세 번 연속 기각하든 정상적 권한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왜 우병우 전 수석의 영장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오해가 이어지는 와중에, 그리고 법원도 그런 오해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해명까지 내놓는 상황에서, 굳이 관례와 다르게 우 전 수석 측에 하루의 여유를 더 주고, 또 그와 관련해 우 전 수석 측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 오해를 자초했는지 알 수 없다.

오해를 빚은 조치가 영장전담 판사들의 결정이었는지, 기자들에 대한 공보 과정에서의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영장심사를 앞두고 "정의는 실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현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오래된 법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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