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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있는 삶' 곧 제도화된다… 재계 '12조 원 비용 어떡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동 관련 법안 중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 등이 포함된 근로기준법이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중 6곳이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경영·노동 현안으로 '근로시간 단축' 이슈를 꼽았습니다.

"주 최대 52시간 노동시간을 준수해 일자리 20만4천 개를 창출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을 앞세워 여당과 정부가 법 개정에 적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야당 역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명분을 무시하기 어려운 만큼 유예기간 등 세부사항만 합의되면 대기업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로'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이 갑자기 크게 줄면 대체 인력 추가 고용, 휴일근무수당 가산지급 등에 따른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이미 잔업·특근 축소, 교대근무제 조정 등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예행연습'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에서 논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핵심은 1주일 최장 근로 가능 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2004년 이후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라 1주일에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노사가 합의한 경우, 1주에 12시간 연장근로(근로기준법 제53조) 및 휴일근로(제56조)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2000년 9월 정부의 행정해석에 따르면, 이 연장근로 12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1주 12시간'이라는 연장근로 상한 기준에서 1주일을 7일이 아니라 주말을 뺀 5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현행법과 행정해석 테두리 안에서는 최장 '주 68시간'(법정근로 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토요일 8시간+일요일 8시간) 근로가 이뤄지는 셈입니다.

이런 법·제도적 혼란에 더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2013년 기준 2천57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706시간)보다 350시간이나 많다는 사실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2015년 9월 노사정은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안에는 기업 규모별 단계적용(4단계), 한시적 특별연장근로 허용(4년, 주 8시간) 등 재계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도 포함됐지만 이후 19대 국회에서 파견법 등 다른 노동 관련 법 개정과 맞물려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20대 국회 환노위는 지난 8월 말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기업을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50~299인, 5~49인 등 기업규모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나눠 유예기간을 차등하고 단계별로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데까지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시행 유예기간으로 민주당은 규모가 큰 기업부터 1년-2년-3년을, 자유한국당은 1년-2년-4년을 주장하면서 완전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국정감사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다음달쯤 다시 근로시간 단축 쟁점이 국회에서 불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밖에도 휴일근로수당의 중복 가산(통상임금의 100%), 추가 연장근로 허용(1주당 8시간), 근로시간 특례업종(주 52시간 예외 업종) 선정 등을 놓고도 여야 간, 경영·노동계 간 입장 차이가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야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큰 방향에 공감했고, 여당 안에서는 "대기업의 경우 유예기간을 6개월로 줄이자", "법 개정이 불발되면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우선 폐기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만큼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내 '주 52시간 근로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가장 마음이 무겁고 초조한 쪽은 재계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이후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12조3천억 원에 이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우선 휴일근로수당 중복가산(통상임금의 100%) 등이 적용되면 기존 근로자에게 연 1천754억 원이 더 지급됩니다.

아울러 근로시간 단축으로 약 26만6천 명의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추가 고용으로 메우면 현금·현물급여 등 직접 노동비용으로 연 9조4천억 원이 필요합니다.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비, 직원채용비, 법정·법정 외 복리비 등 간접 노동비용 약 2조7천억 원도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 비용 가운데 70%(약 8조6천억 원)는 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 집중된다는 게 한경연의 분석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2014년 기준 OECD 평균의 68%에 불과한 우리나라 노동 생산성을 개선하지 않은 채 단순히 노동시간만 줄이면 기업과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자하고 있습니다.

"성과연동형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동사에 업종 특성에 맞춰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도 함께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노사 관계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만약 기업이 법에 따라 휴일근로 자체를 원천적으로 없애면 기존 노조원들의 초과급여가 삭감되고, 이를 보전하라는 노조의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경총이 진행한 근로시간 단축 관련 실태조사(616개사 대상)에서 69%의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삭감되면 노조가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갑작스런 '주 52시간' 체제 도입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이미 '워밍업'에 한창입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각 사업부문 책임자들에게 '가능하면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 개정과 함께 갑자기 주당 10시간 이상 근로시간이 줄어들 경우 예상되는 혼란에 대비한 '연습' 성격이라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입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달 21일 노조에 '잔업 전면 중단과 특근 최소화' 방침을 통보했습니다.

실질적으로 통상임금 소송 1심 패소에 따른 인건비(수당) 인상 부담을 덜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게 기아차 안팎의 분석이지만, 기아차는 이 방침의 공식 배경의 하나로 '장시간 근로 해소'를 거론했습니다.

기아차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과 장시간 근로 해소는 세계적 추세로, 현 정부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주요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가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발전'인 만큼, 잔업과 특근 등 추가 근로를 줄여 정책에 호응하겠다는 설명입니다.

기아차는 2013년에 기존 '10+10시간 주야 2교대'의 심야 근로를 크게 줄여 '8+9시간 주간 연속 2교대제'로 근무형태를 바꾼 뒤, 2017년부터 30분 잔업을 포함한 '8+8시간 근무제'를 운영해 왔습니다.

이번 지침으로 없어지는 잔업시간은 1조 10분, 2조 20분 등 모두 30분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2014년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에서 중소제조업체의 경우 19% 정도만 근로시간 단축 대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답했다"며 "기업들에 충분한 유예기간을 통해 작업 체계 개편 등을 위한 시간을 줘야한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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