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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칼럼] "여배우는 일이 고파요"…남자영화 범람, 설 자리 축소

[연예칼럼] "여배우는 일이 고파요"…남자영화 범람, 설 자리 축소
"어쩔 수 없죠. 작품도 인연인데 또 기회가 있겠죠"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캐스팅 거절 전화를 받는 배우 문소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애써 태연한 척 해보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숨기지 못한다.

'배우 문소리'로 분한 문소리는 자신의 전사(前史)를 적극적으로 끌어다 쓴다. 데뷔 초 해외영화제('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 신인상 수상)에서 주목 받았으나, 연기 경력 18년차에 접어든 그녀는 아직도 배역을 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업계 사람들이 여배우를 보는 기준은 연기력이 아니라 매력과 미모라던가 충무로에는 조폭과 형사가 주인공인 영화밖에 없다는 푸념도 늘어놓는다.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부분이 꽤 많다. 특히 사실적인 업계 묘사는 이 영화를 코미디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배우 문소리가 지적한 충무로 환경과 분위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많은 여배우가 인터뷰에서 "여배우를 위한 영화는 없다",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연예칼럼] '여배우는 일이 고파요

● 여배우는 일이 고프다…시나리오도 없다 

충무로에서 잠정 휴업에 들어간 여배우들이 많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인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들에게도 마땅히 일이 없다.

국내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는 전도연도 시나리오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작자와 감독이 가장 일하고 싶은 배우로 꼽지만 작품 주기는 짧아도 1년, 길면 3년이다. 그녀의 마지막 영화는 2015년 촬영을 마친 '남과 여'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차기작 소식이 없다.

고현정은 5년, 송혜교는 3년 째 차기작 소식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배우들은 스크린 공백을 안방극장으로 채웠다. 그러나 인터뷰 때마다 "영화를 하고 싶지만, 마땅한 작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두 배우는 최근 위안부 소재의 영화 '환향'의 시나리오를 받고 검토 중이다. 

여성 캐릭터를 중심에 둔 영화 기획이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여배우들의 일거리가 줄고 있다. 제작사들은 여배우 중심의 영화를 기획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제작사 대표는 "한국 영화 주요 관객층이 20~30대 여성 관객이다. 이들은 20~40대 남자 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른다. 게다가 대형 흥행을 겨냥한 기획 영화가 주를 이루면서 톱 감독에 티켓 파워가 보장된 남자배우를 중심에 둬야만 투자가 이뤄지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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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영화' 범람…조폭 아니면 형사, 여배우는요?

여배우들의 휴식이 장기화 되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 간 이어진 남성 영화 범람 때문이다. '신세계', '내부자들' 등의 영화들이 크게 흥행하면서 남자 영화 제작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형사와 조폭이 주인공인 범죄 느와르 장르에서 여배우가 할 수 있는 롤은 작을 수 밖에 없다. 조폭의 애인이거나 형사의 아내 아니면 범죄자의 희생양 뿐이다. 

물론 연간 50편 이상 제작되는 한국 영화에 범죄 느와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극이나 전쟁 영화 역시 여배우를 위한 롤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남녀를 가르고 특정 프레임에 가두고자 함이 아니다. 기회의 차이, 다양성이 사라진 업계 환경과 생리에 대한 문제 제기다.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중에서 여배우가 주인공이었던 영화는 '여교사'(김하늘), '시간위의 집'(김윤진), '악녀',(김옥빈), '장산범'(염정아)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이 마저도 모두 제작비 30~50억 미만의 중·저예산 영화다.

한때는 여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너무 고른다는 인식도 컸다. 몇몇 배우들은 원탑 주연만을 요구한다거나, 노출이나 특수 분장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에는 몸을 사린다는 뒷말도 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배우들도 달라졌다. 
[연예칼럼] '여배우는 일이 고파요

● "멀티캐스팅도 좋다…기회만 있다면"

여배우들 사이에서는 멀티캐스팅이라도 작품만 좋으면 출연하겠다는 인식이 보편화됐다. 대작화되고 있는 충무로의 제작 환경에서 멀티캐스팅 영화는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니 흥행 타율도 높다. 게다가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멀티캐스팅 영화들은 캐릭터 분배가 잘 이뤄져있다. 1,2번 주연에 비중을 몰지 않고 주요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볼거리를 강화한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가진 염정아는 "남자 배우들은 멀티캐스팅 영화 제안이라도 많지 않느냐. 부럽다. 작품만 좋다면 캐릭터의 비중 없이 참여하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실제로 염정아는 최동훈 감독이 준비 중인 멀티캐스팅 영화 '도청'의 출연을 확정한 상태다. 

뛰어난 배우는 분량에 관계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법이다. 지난해 충무로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여배우를 꼽을 때 '아가씨'의 문소리, '곡성'의 천우희가 빠지지 않는다. 두 여배우는 해당 영화에서 조연이었고, 출연 분량은 20분 남짓이었다. 그러나 존재감은 주연을 압도했다.

'센스 8'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두나는 지난해 국내 컴백작으로 영화 '터널'을 골랐다. 여주인공이었지만 비중으로 치자면 큰 역할은 아니었다. 그러나 배두나는 터널에 갇힌 남편을 기다리며 국가의 안일한 구조 시스템과 싸우는 세현으로 분해 호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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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극적 활로 모색…신인 감독과 손잡다  

남자배우 중심의 영화계가 바뀔 기미가 보이질 앉자 적극적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배우들이 늘고 있다. 재능있는 신인 감독과 손을 잡기 시작했다. 

임수정, 이나영은 모두 차기작을 신인 감독과 한다. 임수정은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환절기'를 만든 이동은 감독의 신작 '당신의 부탁'을 선택했다. '은밀한 유혹' 이후 무려 3년 만의 스크린 컴백이다. 특급 감독의 멀티캐스팅 영화에도 출연을 고려했지만, 높은 가능성을 가진 신인 감독의 영화를 택했다.

결혼과 출산 이후 장기 휴업에 들어갔던 이나영도 칸영화제 초청으로 주목을 받은 윤재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뷰티풀 데이즈'의 출연 소식을 알렸다.

신인 감독과 연이은 협연으로 제3의 전성기를 맞은 배우도 있다. 김혜수는 2014년 신인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에서 파격적인 스타일의 '엄마'를 연기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어 김태곤 감독의 '굿바이 싱글'로 200만 흥행을 일구며 신인 감독과 연이은 시너지를 냈다. 개봉을 앞둔 '소중한 여인' 역시 신인 이안규 감독의 작품이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그래도 신인 감독들의 시나리오는 간간히 들어오는 편이다. 옥석을 가리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실험적이고 패기넘치는 작품이 가끔 눈에 띈다. 무엇보다 여배우를 장식적이거나 도구화된 캐릭터로 소비하지 않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다 보니 연기의 폭과 깊이를 넓힐 수 있다. 때문에 독립영화라 하더라도 배우에게 출연을 권한다"라고 전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영화 포스터 및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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