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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96cm' 김신욱의 프리킥 골은 무엇이 특별한가?

[취재파일] '196cm' 김신욱의 프리킥 골은 무엇이 특별한가?
196cm에 몸무게가 97kg이나 나가는 김신욱은 프리킥을 차기에는 체격 조건이 좀 불리(?)합니다. 페널티 박스 밖에서 공을 차기엔 체격이 너무 좋죠. 이런 선수는 골문 앞에서 비벼주는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을 하는) 게 더 위협적입니다. 농구에서 센터처럼 리바운드 골을 노리기에도 유리하고, 프리킥 위치가 골문과 거리가 있을 때는 고공 플레이를 시도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김신욱이 프리킥을 직접 차서 이번 달에만 두 번이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직접 한 번 보시죠.
 

●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고작 두 골 넣은 것 갖고 이렇게 호들갑이냐고요? 아래 숫자 한 번 보시죠. 

1위
- 김신욱은 이 두 골로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프리킥 득점 선두'가 됐습니다.

3명
- 김신욱을 포함해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은 선수는 모두 3명. 김신욱과 한솥밥을 먹는 '절친' 김진수와 인천 최종환뿐입니다. 
김신욱과 김진수가 함께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6골
- 35번째 시즌을 맞은 프로축구에서 한 시즌에 가장 많은 프리킥 골을 넣은 선수는 안드레(2000년. 안양LG)와 뽀뽀(2006년. 부산)로 모두 6골씩 넣었습니다. 한국인 선수로는 고종수가 2001년 기록한 5골이 최다입니다.

어쩌다 운이 좋게 두 골 넣은 거 아니냐고요? 자, 그럼 한 시즌에 프리킥으로 두 골 넣는 선수가 흔한지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프리킥으로 2골 이상 넣은 선수는 5명. 1위는 3골을 넣은 쿠티뉴(리버풀)고 산체스(아스날), 시구르드손(스완지) 등 4명이 2골을 넣었습니다. 2015~2016시즌에는 두 골을 넣은 윌리안(첼시) 등이 최고였습니다.
2016-17 프리미어리그 프리킥 득점 순위
프리킥에서도 세계 최고 라이벌 관계인 메시와 호날두 기록을 봐도 그렇습니다. 호날두와 메시가 함께 라리가에서 뛰기 시작한 2009-2010시즌부터 지난 1월까지 프리킥 직접 득점은 호날두가 20골, 메시는 17골입니다. 한 시즌에 3골 이상 넣지 못한 해가 더 많았습니다.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왼쪽)과 리오넬 메시(오른쪽)
100%
- 김신욱의 프리킥과 관련해 가장 놀라운 수치는 바로 성공률입니다. 김신욱은 올해 프리킥 슈팅을 딱 두 차례 시도해 모두 넣었습니다. 성공률 100%입니다. 물론 시도가 많지 않았기에 유의미한 통계는 아닙니다.

다만 세계 정상급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들의 성공률을 참고할 수는 있을 겁니다. 호날두는 스페인 프로축구리그에서 20골을 넣기까지 291번을 찼습니다. 성공률은 6.87%입니다. 메시는 212번 차서 17골을 넣었습니다. 8% 조금 넘습니다.

● 승부욕 많은 연습 벌레가 만든 프리킥 골

프리킥은 한 골로 승부가 갈릴 수 있는 축구에서 치명적인 공격 옵션 중 하나입니다. 특히 움직이지 않는 공, 데드볼(dead ball)을 차기 때문에 많은 연습으로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발목이 유연하고 킥에 자신 있는 선수들은 전문 키커,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시간을 내 개인 연습을 합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축구팀 훈련장엔 다양한 형태의 이동식 월(wall, 수비벽)이 있습니다. 하루에 수십 개, 그렇게 수년을 반복해 차면서 자신만의 벽을 넘기는 궤적을 완성해나갑니다. 데드볼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연습해도 팀 내 더 좋은 키커가 있다면 실전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리킥 연습은 늘 차는 선수만 합니다.
전문 프리키커들은 팀 훈련이 끝난 뒤 수비벽 모형을 세워 놓고 따로 프리킥 연습을 한다.
김신욱이 고등학교 졸업 후 하지 않던 프리킥 연습을 다시 시작한 건 울산 소속이던 2014년이었습니다. 당시 사령탑 조민국 감독은 김신욱 선수를 불러 프리킥 연습을 주문했습니다. 의아해하는 김신욱에게 조 감독은 "너는 다리에 힘이 좋으니까 인사이드로 가볍게 대기만 해도 들어간다"며 독려했습니다.

2014년 7월 19일 경남전. 김신욱의 생애 첫 프리킥 골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큰 자신은 없었어요. 그런데 수비벽의 가랑이 사이 빈틈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공간을 보고 찼는데, 벽 맞고 들어갔으니 사실 행운이 따른 골이었죠. 하하."


그렇게 프로 첫 프리킥 골 맛을 보고도 김신욱은 다시 프리킥과 멀어졌습니다. 전북 이적 후에는 프리킥 연습을 따로 한 적도 없습니다. 팀에는 김진수와 이승기, 정혁과 이재성 등 스페셜리스트가 이미 많았습니다.

지난 8일 울산전, 3년 만의 프리킥 골은 알려졌듯 내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승부욕이 잠든 재능을 깨웠습니다.

"왼발잡이인 (김)진수가 잘 차는 위치는 아니었고, 이승기 선수는 별로 자신이 없어 하더라고요. 로페즈가 오더니 자기가 찬다하더라고요. 앞서 골맛도 봤겠다 욕심이 난 거죠."

이미 3대 0으로 앞선 상황. 김신욱도 욕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김신욱 : 저기 공간 보이는데, 내가 한 번 차자.
로페즈 : 너는 못 넣어.
김신욱 : 넣으면 어떡할래?
로페즈 : 1만 원 줄게.


내기가 오기를 불렀고, 그 집념이 골이 됐습니다. 3년 전과는 달리 벽을 피해 낮은 구석을 강하게 찔렀습니다. 이렇게 되자 16일 상주전 프리킥 기회에서 김신욱이 차겠다고 했을 때는 아무도 말리는 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동료들의 믿음과 양보에 김신욱은 한 차원 높은 골로 답했습니다. 전처럼 벽의 빈틈을 노린 게 아니라, 강력한 힘과 정교한 기술로 벽을 넘겨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벽을 쌓은 수비수와 한쪽을 포기한 골키퍼 모두 허수아비로 만든 완벽한 골이었습니다. 

● 3번의 프리킥 골, 제 점수는요?

김신욱 선수에게 궁금한 점을 쏟아냈습니다. 

Q. 수비벽을 세워 놓고 프리킥 연습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러게요. 프리킥 연습은 안 했지만 슈팅 연습은 늘 했거든요…"

Q, 슈팅 연습은 프리킥 연습과는 다르잖아요.

"그렇죠. 드리블하다 차기도 하고, 멈춰져 있는 공을 때리기도 하고, 각도를 보고 차기도 하고. 슈팅 연습을 다양하게 했어요.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슈팅 연습은 얼마나 하나요?

"근육이 괜찮고, 경기가 없을 때는 팀 훈련 끝난 뒤 혼자 남아 50개에서 100개 정도는 매일 하죠. 50개 정도면 근육이 부상당하지 않을 딱 좋을 양이거든요."

Q. 그래도 상주전 골 궤적은 쉽게 나올 게 아니던데요.

"슈팅 연습하듯 벽을 넘겨서 구석으로 차보자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찼어요. 하하"

Q. 스스로 점수를 준다면 몇 점짜리인가요?

"상주전 골은 벽을 넘겨서 찼으니 90점, 울산전은 80점 정도요. 맨 처음 경남전 골은 60점이요."

Q. 이제 전북에서 프리킥 기회가 나면 경쟁이 볼만하겠어요.

"아녜요. 자신 있는 선수, 조금 더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차는 게 맞죠."

Q. 그렇다면 김신욱 선수는 프리킥 상황에서 몇 번째 옵션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세 번째? 하하. 진수, 승기 그다음이 저 아닐까요?"

● "대표팀에서 완성된 김신욱을 보여주겠다"

공교롭게도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은 김신욱이 프리킥 골을 넣은 두 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김신욱은 "대표팀을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 감독님 앞에서 골을 넣어 기분은 좋다"고 말했습니다. "전북에 보탬이 되는 게 먼저"라면서도 대표팀에 대한 열망은 숨기지 않았습니다.

"울산과 전북에서는 '김신욱이 이 팀에 왜 필요한 선수인지' 보여줬지만, 대표팀에서는 아직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완벽한 제 모습을 보여준 경기가 없어요.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고, 경기 결과로 증명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김신욱은 연습 벌레로 유명합니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는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키가 큰 선수들은 보통 무게 중심이 높기 마련인데 김신욱은 그게 약점이 되지 않도록 늘 개인 훈련을 따로 합니다. 전북 최강희 감독이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 걱정이다"고 할 정도입니다. 올해 김신욱은 머리로 넣은 골(2득점)보다 발로 넣은 골(7득점)이 훨씬 많습니다. 역시 연습 덕분입니다. 
김신욱은 A매치 33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김신욱 선수의 프리킥 골은 제법 운이 따랐던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행운이 거듭된다면 그건 셀 수 없이 반복한 연습의 결과일 겁니다. 프로야구에서 홈런 하나를 치기 위해 백만 번 이상 스윙 연습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김신욱의 프리킥 골 이전에도 수십 만 번의슈팅 연습이 있었습니다. 김신욱은 대표팀에서 성공,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순간을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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