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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L-SAM은 잊어라"…사드 '배치' 다음은 '구매'?

[취재파일] "L-SAM은 잊어라"…사드 '배치' 다음은 '구매'?
작년까지만 해도 군(軍)은 미국 고고도 요격 체계 사드(THAAD) 논란이 불거지면 국산 장거리 요격 미사일 L-SAM 개발 계획을 꺼내 들었습니다.

“L-SAM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사드를 도입할 계획은 없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유도무기 기술을 토대로 L-SAM을 개발하면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해 다층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 여러 차례 했던 말입니다.

작년 상반기까지 상황으로, 이후 군은 돌변했습니다. 작년 하반기에 벌써 L-SAM 개발을 시작했는데도 군은 지금까지 꽁꽁 숨겼습니다. 우선협상대상업체를 선정하고 얼마 후 계약을 맺은 사실을 철저히 덮었습니다.

군의 이런 행태를 두고 군 내부에서조차 ‘사드 모셔오기’라는 수근거림이 들립니다. 사드를 구매하지 않는 이유가 L-SAM 개발이었는데, L-SAM 개발 착수 사실을 숨긴다는 것은 사드를 구매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넘어 우리 정부의 사드 구매! 전시작전통제권 즉 전작권과 직결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KAMD와 대북 선제타격 계획 킬 체인(Kill Chain)이 어그러질 일입니다.
 
● ‘L-SAM 지우기’ 대작전

작년 9월 23일 방위사업청 사업관리분과위원회는 한화를 L-SAM 사업 우선협상대상업체로 선정했습니다. 3개월 뒤 12월에는 우선협상 대상업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요격고도 40~60km, 사거리 90km의 국산 요격 시스템 L-SAM 개발이 바야흐로 시작된 것입니다. 2020년대 초반까지 2조 3천억 원을 들여 4개 포대를 전력화하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국방부도 방위사업청도 L-SAM 개발 착수 사실을 감추는데 급급했습니다. 지난 주말 개발 착수 사실이 보도되자 방위사업청 측은 “탐색개발을 하는 초기 단계라 홍보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맞는 말일까요?

방위사업청은 작년 11월 17일 ‘무인지상감시센서 탐색개발사업 착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같은 탐색개발 사업인데도 무인지상감지센서는 널리 알렸습니다. 무인지상감시센서도 긴요한 군 장비이지만 L-SAM은 북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창끝입니다.

군은 작년 8월 13일엔 ‘차기 잠수함구조함 탐색개발 우선협상 대상업체’ 보도자료를 써냈습니다. 역시 탐색개발 우선협상 대상업체 선정 자료입니다. 게다가 L-SAM과 똑같은 사업관리분과위원회의 결정이었습니다. 사업관리분과위원회의 어떤 결정은 알리고 어떤 결정은 숨기고....

방위사업청은 L-SAM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습니다. 국방부도 마찬가지입니다. L-SAM을 개발하니 사드를 사올 이유가 없다던 군이 L-SAM을 사람들 기억에서 지우려는 것은 사드를 사올 이유를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요?

● 모두 다 같이 사드 성능 부풀리기
한미의 사드 배치 가능성 논의 착수 발표가 있던 지난 7일, 군 고위 관계자는 "사드 1개 포대가 북한 미사일로부터 남한의 1/2에서 2/3을 방어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 KIDA가 만들어낸 논리입니다. KIDA는 책임연구위원을 내세워 지금도 ‘1/2~2/3 방어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사드 3개 포대면 남한은 북한 미사일로부터 해방된다는 주장입니다. 달리 말하면 L-SAM은 개발할 필요도 없고, 아예 KAMD와 킬 체인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뜻이 됩니다. 주한미군이 사드를 배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정부의 사드 2개 포대 구매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사드 1개 포대는 남한의 1/2에서 2/3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1/2~2/3 방어론’을 처음 발설했던 군 고위 관계자도 국방부 기자단과 논쟁 끝에 “노동과 스커드 미사일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꼼짝 않고 발사됐을 때 남한의 1/2~2/3을 막을 수 있다”로 한발 물러섰습니다.

노동과 스커드는 TEL이라는 발사차량에 탑재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발사하는데도 군은 이런 모든 전제들을 싹 가렸습니다. 군이 사드 성능을 부풀리기 위해 채택한 전제는 “북한 미사일이 사드에 요격당하기 위해 발사됐을 때”에 가깝습니다.

● 대한민국 처지에 KAMD, 킬 체인은 과욕?

국산 중거리 요격 미사일 'M-SAM' 포대
사드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요격 체계입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이 독한 마음 먹고 미사일을 발사하면 뚫립니다. 북한이 가장 열성적으로 가다듬고 있는 KN-02는 사드 요격 권역 밑으로 날아다닙니다. 스커드 미사일 요격도 쉽지 않다고 주장하는 미사일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미사일을 몇 발이라도 막을 수 있다니 순수하게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한다면 환영해 마땅합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L-SAM은 지우고 억지로 사드 성능은 부풀리는 군의 요즘 행태를 보면 주한미군 사드 배치 다음 수순은 사드 구매인 것 같습니다. 1개 포대 가격이 1조원이 넘고 또 천문학적 액수의 운영비가 드는 사드의 구매는 킬 체인과 KAMD 계획 수정으로 직결됩니다.

사드를 우리 정부 예산으로 사들이기 시작하면 종말단계 상층 방어용인 L-SAM 개발 뿐 아니라 중층 방어용 M-SAM 양산, 그리고 M-SAM과 성능이 비슷한 패트리엇-3 도입 사업의 예산을 덜어내야 합니다. 예산 삭감 0 순위는 단연 L-SAM과 M-SAM입니다. 북한 미사일을 선제공격하는 킬 체인의 눈인 정찰위성 사업도 축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 한 유력 매체는 KAMD와 킬 체인은 아예 접어두고 “패트리엇-2만 갖고 있는 우리 군의 능력을 감안하면 사드 배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흔한 4성 장군 한마디에 사드 논의를 중단하는 우리 처지에 자주적 미사일 방어 체계, 자주국방은 과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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