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씨는 입장문 말미에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주된 내용은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속 시원한 사과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 "SBS 보도는 설민석 씨의 사관을 문제삼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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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기독교 측 16명, 천도교 측 15명, 불교 측 2명으로 구성됐다. 3.1 운동을 촉발한 주역들이지만 조선 민중보다 소극적으로 행동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data-captionyn="Y" id="i201032270"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320/201032270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SBS 보도는 민족대표 33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설 씨의 사관을 지적한 게 아니었습니다. 설 씨의 말대로 민족대표들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엇갈리는 게 사실입니다. 기자가 취재한 역사학자들도 저마다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들을 '3.1 운동을 이끈 선구자'라고 치켜세운 반면 다른 학자는 '리더십이 부족했다'거나 '무책임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 "사실을 곡해하는 선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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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낭독하기로 했지만 태화관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data-captionyn="Y" id="i20103226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0320/20103226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기자가 문제 삼은 부분은 역사적 사실을 곡해하는 설 씨의 선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설 씨의 강의와 책 내용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민족대표 33인은 '우리나라 1호 룸살롱' 태화관에 모여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 태화관으로 간 이유는 손병희와 사귀는 '마담' 주옥경이 태화관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걸로 보인다. 마담이 안주를 더 준다거나 할인해준다고 했을지 모른다. 술에 취한 손병희는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민족대표 측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와 '엉뚱한 행동'으로 3.1운동은 시작도 못하고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설 씨의 표현은 3.1 운동 지도부인 민족대표 33인을 낮게 평가하는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이 정도면 비판적 시각이라기 보단 일방적 깎아내리기에 가깝습니다. 국사학자들은 하나같이 설 씨의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설 씨처럼 민족대표 33인을 비판하는 학자들마저 설 씨의 강의 내용이 저속하고 단정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 설민석 씨의 강의 내용을 뒷받침할 사료는 있는가?
설 씨 측에 강의 내용을 뒷받침할 사료가 있는지 물었더니 이메일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태화관을 룸살롱이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선 지난 2001년 한 정치외교사 전공 교수가 신문에 쓴 칼럼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 칼럼은 '야사(野史)'를 기반으로 쓴 가벼운 글이었는데 사료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또 술판을 벌였다는 근거로는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일부분을 발췌해 보내줬습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태화관에서 일제히 축배를 들고는'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설 씨는 축배를 술판으로 해석했습니다.
●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변절했다?
SBS 보도로 촉발된 민족대표 33인 폄훼 논란은 이들의 친일 변절 논란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강의를 다시 들어보니 설 씨는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3.1 운동 이후 변절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설 씨의 주장은 타당할까.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살펴봤습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이 사전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최린', '박희도', '정춘수' 세 명입니다. 이갑성이란 인물이 일본의 밀정이었다는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황입니다.
민족대표 대부분은 독립선언으로 징역 1년 6월에서 3년 사이의 실형을 살았고, 옥살이 이후 독립운동을 이어간 인물도 적지 않습니다.
● 설민석 씨에게 드리는 고언
딱딱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는 언어로 대중화한 설 씨의 공적은 높게 평가할만합니다. 그러나 알기 쉽게 전달하려다 역사적 사실을 엉뚱하게 기술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됩니다. 설 씨는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역사교육을 전공한 선생님입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모두 아우르다 보니 크고 작은 오류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열린 마음입니다. 학계의 여려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태도는 설 씨의 강의를 더욱 품격있게 만들어 줄 거라 믿습니다.
아울러 설 씨에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상심이 클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시길 바랍니다. 후손들은 노구를 이끌고 어렵게 설 씨의 사무실을 찾았지만, 설 씨를 만나기는커녕 통화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역사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가 문제 된 것도 한쪽의 시각에서 역사의 정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폄훼는 곤란합니다. 사료에 기반한 서로 다른 사관의 건전한 토론만이 우리의 역사를 빛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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