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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엮여서, 어이가 없고, 손톱만큼도"…대통령의 특별한 신년 간담회

[리포트+] "엮여서, 어이가 없고, 손톱만큼도"…대통령의 특별한 신년 간담회
'하소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나 잘못된 일, 딱한 사정을 간곡히 호소한다는 의미인데, 남이 적극적으로 들어주기 바라는 답답한 심정일 때 '하소연한다'고 말합니다.

헌법 심판을 앞두고 직무정지 된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부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할 곳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소연(?) 자리로 착각할만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었으니 말입니다.

오늘(2일) '리포트+'에서는 1월 1일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신년 기자간담회의 특별한(?) 혹은 이상한 점들을 살펴봤습니다.

■ 답은 정해져 있고 기자들은 참석만 해

정유년(丁酉年) 새해 첫날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간담회는 '서프라이즈(Surprise: 뜻밖의 일, 놀라움)'에 가까웠습니다.

애초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오찬 행사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대통령과의 간담회는 일정에 없었죠.
서프라이즈 간담회
그런데 한 비서실장과 오찬 행사가 시작되고 20여 분이 흐른 뒤, 배성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부터 '긴급 공지'가 날아왔습니다.

"대통령이 상춘재에서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해 덕담과 안부를 전하는 자리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간담회 공지가 알려지고, '30분 뒤 시작'이라는 일정까지 정해졌습니다.

식사하던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기자들까지 급하게 간담회에 달려가야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자들은 운동복 차림으로 급히 참석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간담회에 뛰어가야 했던 기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배려(?)였던 걸까요?

기자들은 간담회가 열릴 상춘재에 노트북도, 휴대전화도 가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청와대 측이 '정식 기자간담회가 아니'라며 사진 촬영, 노트북 속기, 휴대폰 녹음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수첩 메모뿐이었죠.

이후 기자들에겐 청와대 전속 사진사가 직접 촬영한 사진 6장과 청와대 측이 제공한 영상만을 나중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근접 촬영한 사진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진 비교를 통해 성형시술 의혹을 제기한 기사가 나오자 이를 사전에 막으려는 조치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 엮여서, 어이가 없고, 손톱만큼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공지 이후 40여 분 동안 진행된 신년 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들께 미안하다는 생각에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면서도 자신이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이라는 의혹과, '세월호 7시간 행적 논란' 등에 대해 무고함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특히 '왜곡', '오보', '허위 남발' 등의 단어를 동원해 언론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엮었다", "어이가 없다", "까발리니" "손톱만큼" 등의 표현을 써 가며 다소 거칠게, 상당히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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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언론이) 너무나 많은 왜곡과 허위를 남발해 걷잡을 수 없게 됐어요."
박 대통령은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세월호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 "어이가 없다"며 일축했습니다.
*그래픽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이 처음에는 밀회를 했다고 하다가, 이런 정말 말도 안 되는, 누가 들어도 얼굴 붉어질, 어떻게 보면 나라로서도 ‘대한민국이 그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다음에는 굿을 했다고 하다가, 또 수술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어이가 없고…”
세월호 참사 당일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래픽
[박근혜 대통령]
“시간이 지나니 '굿을 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돼 어이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성형수술 의혹도 떠올랐어요. 미용시술 건은 전혀 아닙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를 '지인'이라고만 칭했습니다. 최 씨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래픽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의 직무와 판단이 있는데, 어떻게 지인이 모든 것을 다한다고 엮을 수 있어요. 저는 제 나름대로 대통령으로서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 왔어요.”
박 대통령은 최 씨와 딸 정유라 씨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과 KD코퍼레이션의 현대자동차 납품, 김영재 성형외과의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는 의혹 등도 전면 부인했습니다.

삼성을 헤지펀드에서 보호하고, 중소기업을 도우려는 '순수한 의도'였다는 것이 대통령의 반박 논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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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완전히 엮은 것입니다. 어디를 도와주라 한 것과는 제가 정말 확실하게 말씀드리는데, 그 누구를 봐줄 생각, 이것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어요.”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 씨가 추천한 인사들이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인선됐다는 논란에 대해 "누구나 추천은 할 수 있지만 잘할 수 있는 분을 택하는 것이지 누구를 봐주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일축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건강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습니다.

*그래픽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부터 모든 사람은 자기의 사적 영역이 있어요…어디가 아파서 이런저런 약을 먹었다는 것을 일일이 다 까발린다는 것은 너무나 민망한 일이에요. 그런 문제로 국가에 손해를 입힌 것은 전혀 없습니다."
■ 직무정지 된 대통령의 간담회는 헌법 위반?

신년 기자간담회는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부 인사를 23일 만에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직무정지 시기에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등산을 했지만, 당시에는 '비보도를 전제'로 이루어진 행사였죠.

하지만,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앞두고 언론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보도를 전제로 한’ 간담회였습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는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신년 간담회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헌법 65조 3항에 따르면,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직무정지를 당한 대통령이 홍보수석을 통해 기자들을 모으고, 간담회를 위해 예산을 쓴 것은 탄핵소추 의결을 받은 대통령으로서는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직무 정지된 기간에는 기자들이 먼저 요구를 해도 간담회에 응해서는 안 되는데, 30분 만에 기자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위헌 사유라는 것이죠.

청와대 측이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한 것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금지, 촬영 불허 등 취재의 기본적인 요건을 보장하지 않은 ‘말뿐인’ 기자간담회였다는 겁니다.

자유로운 취재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들이 참석을 거부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종철 / 자유언론재단 이사장]
“청와대 기자단은 간담회 형식의 기자회견을 왜 여는지를 상세히 묻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으면 참석을 거부했어야 마땅했다.”

각종 의혹에 대해 어이가 없고, 그런 의도는 손톱만큼도 없었고, 전혀 모른다는 대통령.

자신은 완전히 '엮인 것'이라고 하소연하는 박 대통령을 보며, 국민은 의구심이 생깁니다.

국민은 왜 이런 시국에 '엮이고' 있는 걸까요?
 
(기획·구성 :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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