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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족은 어떻게 공인(公人)이 되는가

참사가 정치가 되는 이유

[취재파일] 유족은 어떻게 공인(公人)이 되는가
참사는 돌고 돌아 결국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국회는 권력 투쟁의 장입니다. 이제 중요한 건 힘의 역학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고(故)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이 그랬습니다. ‘백남기 특검’은 야당 입장에선 여당을 압박할 하나의 ‘카드’이고, 여당 입장에선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과 맞바꿔야 할 ‘지렛대’입니다. 남은 건 협상입니다. 국회에서 다뤄지는 참사는 여당과 야당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어느새 ‘정치’가 됐습니다. 언론은 이를 ‘논란’이라고 불렀습니다.

국회는 말이 넘칩니다. 국회기자 2년 차, 제가 하는 일의 팔 할은 300명 의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솎아내는 겁니다. 기자들은 받아치기 바쁩니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이 다시 새끼를 칩니다. 논란은 더 사나워집니다. 그 사이 유족은 정치의 한 편을 차지하게 됩니다. 반대편에선 유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정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상대의 정치적 공격도 감내해야 합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유족은 그렇게 공인이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다가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큰 기삿거리가 됐습니다.

이제 국회와 언론은 고(故) 백남기 씨 가족의 일상을 들춰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발리를 다녀온 게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일부는 이를 공인의 비행으로 해석했습니다. 참사는 서서히 양비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치를 소비하는 방식 그대로 말입니다. ‘지친다’, ‘둘 다 싫다’는 자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역시나, 세월호 참사가 딱 그랬습니다.

누가 맞고 틀린지 정치적 판결을 내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국회란 공간에서 참사를 취재하는 게 기자로서 참 싫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참사를 취재하는 게 아니라 참사가 정치화되는 과정을 ‘중계’하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 진실과 거짓의 문제보다는 여야 대치, 그리고 이어지는 극적 협상 타결이 우선이었습니다. 여당 의원 발언 10초, 야당 의원 발언 10초, 그리고는 “둘 다 참 나쁩니다.” 이렇게 끝내버리는 기사는 국회 기자에게 참 익숙합니다. 공인이 된 유족도 이런 기사의 어디쯤 권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이렇게 양비론의 블랙홀입니다.

우리는 참사를 굳이 국회에서 소비해야 하는 걸까요. 왜 권력 투쟁의 장으로 끌고 와 유족을 정치 세력의 한 축으로 세워야 했을까요. 정부는 자기 선에서 끝낼 능력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의지가 없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정치의 최전선, 참사가 정치화되는 과정을 중계하는 국회 기자 입장에선, 이런 참사들이 차라리 국회로 넘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사과할 일 있으면 사과하고,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정부는 힘이 세니까요. 그게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내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요. 언제까지 유족들을 국회로 토끼몰이하고, 악에 받치게 만들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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