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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왜 윤동주여야만 했나

이준익 감독은 왜 윤동주여야만 했나
전에 없이 뜨거운 분위기의 인터뷰였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제작 (주)루스이소니도스)'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준익 감독은 현세대가 잊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했다. 더불어 그 치욕스러운 역사를 보는 거울로서 윤동주와 그의 벗 송몽규의 뜨거웠던 삶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주'는 윤동주 시나 읽게 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비유와 상징의 시인으로 대표되던 윤동주가 보여준 죽음의 가치를 생각해본 적 있는가"

묵직한 질문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어떤 시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시인의 삶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삶과 죽음을 외면하고 시만 좋아한다면 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시를 좋아하는 자기 마음을 좋아하는 거다. 그래서 윤동주 시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으면 그 시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봉 전 무려 90여 개 매체와 1:1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동주' 알리기에 나선 그였다. 며칠째 계속된 강행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것 특히 소재가 된 두 인물 윤동주와 송몽규에 관한 질문에는 예외 없이 뜨겁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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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는 일제 강점기,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작품.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한 시인 윤동주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다. 더불어 우리가 몰랐던 열사 송몽규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밟아가는 영화기도 하다.

순제작비 5억으로 만들어진 이 흑백 영화는 빠르고 자극적인 기획영화가 주를 이루는 충무로에서 낯설고도 흥미로운 실험이다. 문학과 영화의 만남, 흑백과 시대의 접목이라는 흥미로운 지점이 여럿 있다.

전작 '사도'로 600만 관객을 모으며 대중적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이준익 감독이기에 저예산 프로젝트는 이례적이었다. 수십억 예산의 상업영화에 대신 작은 영화에 착수한 그의 선택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상업적 부담을 안고 만들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상업영화 방식으로 찍으려면 1~200억으론 턱도 없다. 저예산 영화라 상업적 부담이 없어서 좋다. 물론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부담은 기존의 어떤 영화보다 크다. 가장 근간의 인물이고, 매해 수능에 단골로 나오는 유명한 인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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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수많은 시인 중 왜 윤동주여야만 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생체실험으로 생을 마감한 분이다. 매해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돌리며 윤동주 시의 의미에 대한 정답을 강요하면서 정작 그분의 죽음에 관심이 없었다는 건 너무 죄스러운 일이 아닌가. 나 역시 그랬고 그 관심 없음에 대한 미안함이 늘 마음 한 켠에 있었다. 이 영화를 완성한 지금은 밀린 숙제를 한 느낌마저 든다"

영화의 제목을 가제 '시인'이 아닌 '동주'로 고집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이준익 감독은 "나는 시인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시인을 통해서 그 시대와 그분이 보여준 죽음의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죽음을 가해한 자, 시대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군국주의의 모순과 부도덕성까지 말이다. 유럽의 전범 국가인 독일의 경우 주변국에 의해 끊임없이 악행이 제기되고 문책당했고, 인정과 반성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대해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다. 이 시대에 윤동주의 죽음을 가치를 기리는 것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군국주의의 부도덕성에 대해서 추궁할 근거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동주'는 오래된 시집을 여닫는 형식으로 영화를 진행한다. 세로쓰기로 완성된 오프닝 크레딧부터 두 인물의 연표로 닫는 엔딩 크레딧이 인상적이다.

"윤동주, 송몽규의 실제 사진을 연표에 넣었고, 그들이 다녔던 학교와 잠든 묘비 등의 사진도 넣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했던 사건이 서술된 연표를 넣었다. 우리 이야기가 다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연표로 증명해야 했다. 어떠한 날조나 과장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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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동주'는 미화와 왜곡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두 청춘이 불가피하게 창씨 개명을 해야했으며, 일본의 생체실험 때문에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진 기록까지 낱낱이 스크린에 옮겼다. 

"윤동주 시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미화한다거나 지나친 왜곡과 날조로 과포장한다면 그분의 삶과 죽음에 누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최대한 윤동주의 시처럼 담백하게. 최대한 송몽규의 의지처럼 뜨겁게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영화는 두 인물에게 영향을 끼친 주요 사건마다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들을 배치했다. 연희전문학교 입학을 위해 기차에 몸을 실은 동주는 '새로운 길'이, 여진과 밤길을 걸을 땐 '별 헤는 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창씨개명을 한 후엔 '참회록'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는 '서시'가 흐른다.

시와 사건의 인과관계가 100% 맞다고는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시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동주'의 매력이고 마력이다.

이준익 감독은 시의 배열에 대해 "시와 사건의 시차가 정확히 맞다고는 볼 수 없지만 영화의 허용치 안에서 최대한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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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의 절제된 목소리로 안내하는 윤동주의 시 세계는 영화 '동주'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보너스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의 시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아우의 인상화'를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윤동주의 다른 시와 차별된다. 다른 시들은 내면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진실성이 있었다면, '아우의 인상화'는 자신이 아닌 자신의 아우에 대한 사려깊은 배려와 염려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고 전했다.

과연 우리는 윤동주를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 '동주'가 보여준 국민 시인의 슬픈 죽음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윤동주가 살아생전 가장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은 동주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라고.  

영화 '동주'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사진 = 김현철 기자>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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