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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아들 '필립 안'…뜻밖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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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부모님 서명이 필요하대요."
1920년 대 초 미국 로스엔젤레스,
아직 미국 스크린에는 동양인이 나오지 않던 그 시절 홀로 배우를 꿈꾸던 동양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안 된다!"
하지만 당시 배우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어머니의 반대로 소년의 꿈은 펼칠 수 없게 됩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농사일과 엘리베이터 보이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 소년의 이름은 필립 안.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배우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영화도 하나의 예술이다. 원하는 일이라면 하되, 단 최고가 되라"
세상의 편견을 무릅쓰고 아들의 꿈을 믿어준 아버지의 허락으로 필립 안은 미국 영화계에 정식 입문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허락에 부응하듯 그는 영화판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갑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그의 인기는 동양계 배우하면 필립 안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할리우드 최초의 한인 배우라는 타이틀과 동시에 톰 크루즈, 휴 잭맨, 맷 데이먼 등 유명배우들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1935년 데뷔 이후 1978년 2월 
숨을 거두기 전까지 주 조연을 오가며 200여 편의 작품에서 활약한 필립 안.
하지만 그에게는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인 주연을 맡는 것.
그는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2세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국에서 출생한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필립 안은 누구보다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그런 뿌리깊은 의식에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필립 안의 아버지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
우리가 독립운동가로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분입니다.

주목 받지 못하는 변방의 나라 한국. 
당시 할리우드는 한국인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현실 속에서 필립 안은 중국인과 일본인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늘 자신이 독립운동가의 아들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필립 안은 정말 독특했고, 타고난 재능에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여동생 수잔 안
"외삼촌은 한국 사람으로서뿐만 아니라 남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을 해낸 인물로 존경 받아야 한다."
-조카 필립 안 커디

이기홍, 스티븐 연 등 한국계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할리우드.
이는 이미 80년 전 필립 안이 거친 황무지를 묵묵히 다지면서 걸어갔던 덕분 아닐까요?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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