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 초등학생이 쓴 '아빠는 왜?' 라는 시입니다. 냉장고는 먹을 걸 주고 강아지는 놀아 주는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내용입니다.
가정에서 투명인간이 돼버린 아버지들을 조명하는 연속 기획 첫 순서 한정원 기자입니다.
<기자>
40대 아버지의 가정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저녁 9시 아버지가 돌아오자 거실에서 놀던 엄마와 아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합니다.
[남편 : 아빠 왔다. 부인 : 네. 자요.]
옷을 갈아입은 아버지가 향하는 곳은 거실의 소파.
[부인 : TV 소리 좀 줄여요. 우리 자게…]
간식을 주섬주섬 챙겨 누워서 TV를 보고 컴퓨터 게임도 하다가 혼자 소파에서 잠이 듭니다.
집안에서 소파는 유일한 아버지의 공간입니다.
[부인 : 어느 날은 원하지도 않는데 일찍 오면 어이가 없는 거지… 안쓰럽긴 해요. 자기 말로는 소파가 좋대요. 그게 진짜 좋을까요?]
대화 없이 조용조용 하숙생처럼 생활하니 싸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멀어져 가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김성일/회사원 : 불만은 없어요. 진짜. 혼자라도 어떻게 풀어야 하는데 풀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까 PC가지고 … 가끔 결혼은 왜 했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부인 : 멀어지기는 확실히 멀어지는 것 같아요. 안쓰럽긴 한데 그게 아빠의 인생이지 않을까. 좀 많이 벌었으면 하는…]
초등학생 아들에 비친 아빠의 모습도 서글픕니다.
[초등학생 아들 : (아빠는) 잘 때 오는 사람. 일찍 와서 놀아줬으면 좋겠어요.]
소파 위의 투명인간 아버지.
모여 있지만, 함께 산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집안에서 아버지의 공간을 만드는 것 자체로도 아빠를 가장으로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이학주/회사원 : 불 꺼진 소파에서 누워있는 그 느낌은 정말 참담한 느낌이죠. 그때는 정말 많이 억울했죠. 따뜻한 말 한마디…]
[이은영/가정주부 : 보통 엄마들이 그렇잖아요. 아빠를 큰아들로 생각하기도 하고. 외롭거나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라고는 저도 …]
엄마들이 아버지들 기를 펴게 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혜준/KACE 아버지다움연구소장 : 먹여살리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걸 인정을 해주고 아빠에게 시간과 공간을 줘야되는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 뿐인데 어느날 외톨이가 되어버린 현실을 한탄하기 보다는 가족들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대화 한 번 나눠 보는 게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영상취재 : 김흥기·김현상, 영상편집 : 박춘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