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발굴지 위안바오산 아닌 둥산포일 가능성
2008년 발굴된 지역은 다롄 옛 뤼순 감옥 근처의 위안바오산(원보산, 元寶山)이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당시 이곳을 유력 매장지로 지목하게 된 데는 2장의 사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10년 안 의사가 순국한 뒤 1년이 지난 1911년 뤼순 감옥 뒤편 묘지에서 사형수 천도재를 지낸 뒤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제공자는 당시 감옥 형무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 씨였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후사코 씨는 "사람들이 관을 메고 감옥 뒷문으로 나와 뒷산 묘지로 갔다."라며 안 의사 사형 집행 날 상황을 증언했고 사진에 안 의사의 매장 지점을 추정되는 곳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뤼순 감옥 북쪽에서 매우 가까운 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발굴 결과, 깨진 그릇과 생활 폐기물 등만 나왔을 뿐 감옥 공동묘지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민간 전문가들이 다시 찾은 뤼순 감옥 일대…"둥산포 안장 가능성 가장 크다."
정부 차원의 안 의사 유해발굴 사업이 사실상 멈춰 있는 상황에서 최근 민간 전문가들이 현지 조사에 나서 중국 측 관계자들을 면담해 결과가 주목됩니다. 국가보훈처장을 지내 과거 유해발굴 사업의 경과를 잘 알고 있는 황기철 국민대 석좌 교수와 안 의사 연구에 전념해 온 김월배 하얼빈 이공대학교 교수, 김이슬 하얼빈 이공대 학교 박사가 그들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 상설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해 지난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중국 다롄을 찾았습니다. 특히 뤼순 감옥 박물관 관계자와 과거 유해발굴 실무 참가자, 향토 연구자 등 중국 측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 지역은 현재 600제곱미터 정도의 면적으로, 5개의 90미터 길이 도랑에 과거 뤼순 감옥에서 숨진 사형수들의 유해가 매장돼 있습니다. 중국 측 의견과 현장 확인, 과거 발굴 작업 분석 등을 종합한 결과, 우리 쪽 민간 인사들은 둥산포에 안 의사가 안장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중국이 협조에 나설까?…한중 관계 변수
지난 2008년 공동발굴 조사의 실패를 거울삼아 둥산포 지역에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가능성에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야 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갈수록 지형이 변하고 인근 지역의 개발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많지도 않습니다. 관건은 중국의 협조가 없으면 발굴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발굴 전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이기 위해서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과거 자료도 확보하면 좋겠지만 이 역시 양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정치적 상황과 외교 관계가 국가 간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양 국민 모두의 존경을 오랫동안 받아온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정치적 고려도 배제하고 추진할 수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라는 안 의사의 유언이 순국 113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사진 제공 : 황기철 국민대 석좌 교수(전 국가보훈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