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사면안을 누가 주도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이와 같은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할 수 있을까
예상하고도 강행했다면 그 윤리 의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런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있다는 방증이다. 정몽규 회장은 결정 사흘 만에 사면안을 전면 철회하며 "2년여 전부터 "10년 이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충분히 반성을 했고, 값을 어느 정도는 치렀으니 이제는 관용을 베푸는 게 어떻겠느냐"는 일선 축구인들의 건의를 계속 받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무렵인 2021년, 프로농구 감독 전원을 비롯한 다수의 농구인 역시 승부 조작에 가담한 지도자를 재심의해달라고 탄원한 바 있다. '이만하면 된 거 아니냐'는 목소리는 종목을 막론하고 경기인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다만, 당시 프로농구연맹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해 재심의 자체를 기각했고, 다시는 이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기로 아예 못 박았다는 점에서 축구협회와 비교된다.)
그래도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서
"하루 벌어 하루 산다"
승부 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는 팬이다
2011년 전도유망한 골키퍼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최초로 승부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신변을 위협하는 메일로 메일함이 가득 찼다. 취재원들은 물론 일부 동료 언론인조차 '무책임한 보도로 인해 프로축구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렸다'며 날을 세웠다. 한 웹툰 작가는 '기자 이름 석 자를 잊지 않겠다'는 만화를 그리며 으름장을 놓았고, 요즘 말로 좌표를 찍었다. 팬들은 끝까지 선수들을 믿었다. 그래서 프로축구와 선수, 팀의 명예를 훼손한 기자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다. 당시 팬들은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고통에 분노하고 있었다. 보름 뒤, 승부 조작 혐의로 구속되는 선수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실체가 조금씩 드러났고 모든 팬들이 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과정을 거쳤다. 이번 사면 추진은 승부 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팬들의 상처를 잊은 결과였다.
작금의 사태는 선수 또는 행정가가 되기에 앞서, 이들이 한 클럽의 열렬한 팬으로서 보낸 시간이 결여된 데서 비롯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용돈을 모아 입장권을 사는 대신, 엘리트 선수로서 초청받아 경기를 보고, 사인 한 장을 위해 몇 시간을 줄 서 기다리고도 외면하고 지나간 선수에게 상처받아 본 경험은 없을 게다. 그저 축구가 좋아서, 혹은 특정 선수가 좋아서 축구가 직업이 된 이들은 지금 팬들이 겪고 있는 처참한 심경을 이해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