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문자, 통화, 이메일로 집요하게 물어봤습니다. 원하는 정보가 안 나오면 직접 찾아와서 알려줄 때까지 물어봤습니다"
월성원전 감사 당시 유병호 국장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2020년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던 한 현직 대학교수는 당시 유병호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이 교수는 유병호 국장에 대해 '주요 단서를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맨땅에 헤딩했다. 성의는 대단했다'라는 식으로 평가했습니다. 긍정에 가까운 뉘앙스였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점 조사를 받았던 다른 교수는 당시 유병호 국장의 감사 스타일을 가리켜 '쌍끌이 저인망식 감사'라고 표현했습니다. 부정적 뉘앙스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의 피감사자들은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나올 때까지 털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유병호 국장은 이렇게 1년 여간 월성원전 감사를 이끈 뒤 산업부 간부들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고, 죄명까지 적시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산 권력에 칼을 들이댄 셈이라 2020년 7월 당시 국회에 출석한 최재형 감사원장과 함께 민주당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민주당은 '탈원전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를 방해하는 것이냐'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1월 중순 비(非) 감사 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좌천성 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비(非)감사직에서 5개월 만에 '감사원 실세'로 부활
최재해 감사원장은 유병호 사무총장을 지난달 14일 임명 제청하며 "오랜 현장 감사 경험을 가진 정통 감사관", "강직한 면모의 원리‧원칙주의자" 등 사무총장 적임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동료 간부들 역시 공통적으로 '소신 있게 일을 하기 때문에 일 가지고 장난 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인자' 유병호 국장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간부들도 여럿 있습니다. 한 간부는 최근 유병호 사무총장이 정부 기관을 상대로 대대적으로 벌이는 감사에 대해 "요즘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정권 출범 전이나 직후만 해도 감사원이 중립을 지키려 애썼는데…"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감사원에 대한 따가운 시선
다만, 질주하는 차량에도 브레이크는 있어야 합니다. 감사원의 감사에 대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표적 감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의도와 다르게 이러한 지적과 프레임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감사원은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감사 착수 시점과 착수 당시 특수한 여러 정치적 상황은 감사원의 감사를 해석하게 만듭니다. 가령, 대통령실 이원모 인사비서관 배우자 관련 의혹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오비이락 격으로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는 불필요한 잡음이나 오해가 생기면 '감사의 중립성'이 자칫 의심 받을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국가정보원도 나서고 있는 타이밍입니다. '법과 원칙'대로 하더라도 '법과 원칙'이 만사가 아닌 시대입니다.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진영 논리가 법과 원칙에 우선하고 있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사회 곳곳에서 편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감사원 동료들이 유병호 사무총장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권으로 직행했던 것 또한 유병호 총장에게는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검찰 등판에 명분 실어주는 것"
2년 전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이 힘을 주고 수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감사원이 작성한 200쪽 분량의 수사 의뢰서와 7,000페이지 넘는 참고자료가 컸습니다. 해당 자료들을 본 법조인들은 검찰 공소장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권의 탄압 속에서 검찰 수사가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는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였다는 걸 검찰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감사위원을 지냈던 한 대학교수는 "감사원 위상이 달라지긴 했다. 달라진 위상만큼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사정 국면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검찰의 2중대로 전락할까 봐 걱정된다"라고 했습니다. 권력 감시라는 감사원 본기능의 취지를 살리려면 감사원은 이런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검찰의 2중대'라는 표현은 일종의 권력 지향적 요소가 담긴 표현인데 감사원에 대한 비하의 표현이 아니라 그만큼 감사에 드리워진 검찰의 그늘이 크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일각에서는 감사원 내부 감찰 신중론 제기
또 다른 일부 간부들에 대해서는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망신주기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감사원은 이미 조직 개편을 예고했습니다. 조만간 대폭 인사가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사원 조직 개편에 앞서 공직 기강을 다잡겠다는 의도와 달리 이러한 조치들은 감사원 조직을 둘로 쪼갤 우려가 크다고 감사원 안팎에서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전직 간부는 "정치권이 예민하게 반응할 만한 감사를 주도하면서 칼 끝을 내부로 돌리는 것은 조직 입장에서 리스크가 크다"라고 진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