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내각 성비를 5:5로 구성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2015년이기 때문에” 43살 젊은 총리의 답변은 짧지만 강렬한 울림이 있었고, 명확했다. 캐나다 최초의 무슬림 장관이자 30살 최연소 장관, 게이 장관, 원주민 장관 등을 소개한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와 닮은 내각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연령, 인종 등 다양성을 갖춘 내각은 캐나다 사회를 반영한 결과라는 설명이었다.
정치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못한 현실 속에 전 세계는 총리의 말에 열광했다. 검사 출신으로 캐나다 최초 원주민 출신 법무장관에 오른 윌슨-레이보울드는 “(내각의) 다양성은 실질적 토론과 대화에서 새로운 목소리와 다른 시각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론 해결을 찾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며 내각 구성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일축했다.
43살 총리가 다양성을 정치에 투영하는 사이,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선 ‘노동관련 법안’을 두고 정쟁이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노동 개혁’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한편에선 ‘노동 개악’이라고 반발했다. 법안에 대한 시각차는 뚜렷했지만, 공통점은 두 가지가 있었다. 양쪽 모두 ‘청년을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무장했지만, 그들 중에 청년은 없었다는 것이다.
● 최고령 19대 국회…평균 연령 55세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역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연령을 전수 분석했다. 이번 19대 국회 지역구 의원들의 평균연령은 54.5세. 역대 국회 중 최고령이다. 19대 국회에서 가장 젊은 의원은 35살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다. [정치의 들러리 20대] 기사에서 보도했듯 30세 미만 의원(당선 시점 기준)은 13대 국회(1988)이후 자취를 감쳤다. 지역구 의원으로만 좁히면 6대(1963) 이후 전무하다.
19대 국회의 평균 연령은 최소 연령인 3대 국회(1954) 45.7세에 비하면 8.8세나 증가한 수치다. 일반 회사라면 이미 퇴직했을 나이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인 셈이다. 2014년 우리 국민 평균 연령은 39.8세. 즉, 국회의원의 평균나이는 국민보다 15살 가까이 많았다.
사회의 노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 증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우리 국민의 평균 연령이 1980년 25.9세에서 2014년에는 39.8세로 급증했는데,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11대(1981) 47.3세에서 19대(2012) 54.5세로 완만하게 증가했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듯 문제는 국회의원 연령별 구성에 있다. '평균'이라는 가면 뒤 얼굴에 국회의 진짜 문제점이 있다는 말이다.
● 다양성이 실종된 국회…과대 대표되는 50,60대
19대 지역구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다. 지역구 의원 246명 가운데 118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50대를 제외하고는 40대가 66명으로 26.8%, 60대 이상이 59명으로 24%, 30대가 3명으로 1.2% 그리고 20대는 없다. 18대 국회도 인적 구성에는 19대 국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50대가 국회 다수를 차지하는 것, 현재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지만 과거는 달랐다.
제헌 국회인 1대 국회(1948)부터 12대 국회(1985)까지 국회의 중심은 40대였다. 40대 국회의원은 적게는 지역구 의석의 38.5%(1대,1948), 많게는 61.4%(11대, 1981)를 차지했다. 그런데 13대 국회 이후부터 중심축은 50대로 넘어간다. 50대 의원은 38.3%(16대, 2000)에서 61.2%(14대, 1992)의 지역구 의석을 차지한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30대와 60대 이상에서 나타났다. 1대 제헌국회(1948)에서 전체 지역구 의석의 20.5%를 차지했던 30대 의원은 2대(1950)에선 24.3%까지 증가하지만, 이후 차츰 하락해 19대(2012) 국회에선 1.2%, 단 3석으로 쪼그라든다. 반면, 제헌국회(1949)에서 10%였던 60대 이상 의원은 조금씩 줄어 11대(1981)에선 5.4%까지 감소했지만 이후 반등했고, 19대(2012)에서 24%까지 늘어난다. 결론적으로 30대 의원의 급격한 감소와 60대 이상 의원의 급격한 증가가 국회 노령화의 주원인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민전 교수는 “우리 국회의 노령화는 전체 국민의 노령화 추세에 더해 사회가 점차 안정화되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다만, 이것은 “사회에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기존 정치인이 기득권을 강화한 결과”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 출발부터 불리한 젊은 정치인…국회 노령화의 요인
기존 정치인의 기득권 강화. 이는 국회의원 노령화가 단순히 유권자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 정치인이 젊은 정치인을 배제한 결과라는 걸 의미한다. 출발부터 젊은 정치인은 불리했던 것이다. 이는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역대 국회의원 후보자 분석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제헌국회 선거(1948)에 출마한 후보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2%다. 7대(1967)에서 11.3%까지 증가했던 20대 후보자는 이후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여 19대(2012)에서는 1.2%, 902명 중 12명에 그쳤다. 30대와 40대 후보자 역시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30대 후보자의 경우 1대 국회인 제헌국회(1948)의 22.0%에서 19대(2012)에서 역대 최저인 2.2%로 1/10로 줄었다.
20~40대에서 줄어든 몫은 50대와 60대 이상으로 돌아갔다. 1대 국회에서 각각 26.2%와 9.5%를 차지했던 50대와 60대 이상 후보자들은 19대 국회에서는 48%와 22.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당들이 20~40대 후보자 공천을 대폭 줄이고 50대와 60대 이상을 무더기 공천한 결과, 역대 최고령 19대 국회가 탄생한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온 노년층이 생물학적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가치 절하될 수는 없다. 나이는 경륜을 의미할 수도 있고, 연륜 많은 정치인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보다 잘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적 나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 언론 보도에서 나왔 듯 19대 국회에서 노인복지법 개정안 등 65살 이상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이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보다 4배나 많이 발의 됐다. 특히 노인 혜택 법안 300여개를 발의한 국회의원 대부분이 60대 의원이라는 점, 청년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을 최다 발의한 국회의원이 35세 최연소 국회의원인 김광진 의원이었다는 사실은 나이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돈 안드는 정치, 정당 정책이 중요
19대 총선이 열린 2012년, 우리 전체 국민 중 인구 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로 전체 인구의 17.3%를 차지했다. 60대 이상이 16.5%, 30대 16%, 50대 15.3%, 20대가 13% 순이었다. 반면, 최고령 19대 국회에선 50대가 지역구 의석의 47.3%, 40대가 26.7%, 60대 이상이 23%, 30대 3%, 20대는 0%였다. 50대와 60대 이상은 인구 구성과 비교할 때 상당히 과다 대표되고, 20대와 30대는 지나치게 과소 대표됐다. 국회의 노령화 이면에는 인구 구성을 대표하지 못하는 또 다른 모습이 있는 것이다. ‘청년’을 이야기 하면서도, 청년을 배제한 결과다.
‘역동성이 사라지면 발전은 없다.’ 경제에서 통용되는 이 말은 정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사회를 설계하는 정치에서 역동성이 배제되면 사회의 동력은 상실된다. 정치의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다양한 연령층의 국회 입성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와 정치권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김민전 교수는 “현재의 선거는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 경제력이 떨어지는 젊은 층이 도전하기엔 힘들다”며, “기금 조성이나 정치 자금 보조 등을 통해 이들을 정치에 참여 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또 “정치권이 실제로 젊은 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공천을 할 때 젊은 정치인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비례대표에 젊은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구 선거로 당선이 힘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비례대표로 물꼬를 터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례대표 선거가 실시된 17~19대 총선에서 20대는 0명, 30대는 9명에 그쳤다.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71명과 36명이었다.
4월로 다가온 20대 총선에선 국회 나이가 어떻게 변할까. 획일화 된 여의도에서 다양성을 외치는 국회의 목소리가 진실된 의지의 표현인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지는 4월 선거 직전 발표될 비례대표명부와 정당의 공천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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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