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고 선언한 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합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법적 책임에 대한 부분이 빠졌고, ‘10억엔’도 배상의 성격이 아니라는 점, 소녀상 이전 문제가 또 다시 거론된 점 등에 대해 할머니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진일보 했다는 정부 자평과는 정반대로 ‘외교참사’ '굴욕외교'라는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입장은 확고했다.
김군자 할머니
"정부가 함부로 합의를 해놨습니다. 우리 그거 인정 못 해요. 그걸 다시 해서 개인적 합의를 받게 해주세요. 개인적으로 합의를 해도 시방 할머니들이 없어요. 한 40명 남았는데 그게 얼마 된다고 정부가 합의를 봤습니까. 이건 너무 우리를 무시한 것이에요. 우리 정부가 다시 우리를 일본과 다시 저거해서 공적 배상을 받게 해주세요."
이옥선 할머니
"우리 정부에서 할머니들 팔아 먹은 것과 한가지다. 얼마나 우리가 억울하고 분하나. 정부에서 뭘 합니까. 다른 것 요구 없어요. 그저 공식 사죄하고 배상문제, 꼭 난 받아야겠어요."
할머니들은 합의 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단 사실에 분노했다. '말도 한 마디 없고 정부끼리 쑥덕쑥덕하면 타결이냐'고 되물었다. 깜깜이로 진행된 합의 결과가 이렇다는 것에 또 분개했다.
하지만, 그 어느 발언도, 할머니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합의 전 뵙고 의논했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전날 일본이 갑자기 움직이고, 연휴가 사흘이나 돼서 따로 뵙고 의논 못했다"며 송구스럽다는 발언도 나왔다. 휴일이어서 사전 논의를 못했다니, 혹여 움직일 뻔한 마음도 붙들어 매게 할 판이다.
정부는 합의의 후속 조치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재단 설립 일정도 대략 윤곽을 드러났다. 이르면 다음 달 초 재단 설립추진위원회가 출범하고, 내년 초에는 재단이 설립된다. 비교적 이른 시점이다. 계획은 착착 진행되는데, 피해자들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국의 협상 과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합의를 인정할 수 없는 피해자로선, 안 하느니만 못한 합의로 여겨질 소지가 다분하다. 국제사회는 해결된 문제로 인식하겠지만, 민간을 통해 어떻게든 호소를 계속할 것이다. 일본은 합의를 근거로 ‘최종적인 해결’을 보장하라고 압박해 올 것이고, 우리 정부는 일본의 압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부가 자신들과 한 목소리를 내왔는데, 합의 이후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단 얘기다. 당장 오늘(30일) 합의 타결 이후 처음으로,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수요집회가 열린다.
아베 총리는 총리 자격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 시점은 한일 수교 50주년에 딱 맞아 떨어졌다. 우리 정부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불가역적 해결'이 실제 이뤄진다면 이런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한일 수교 00년, 위안부 합의 00년'. 기념하기도 좋다.
이 뿐이랴. 대통령이 의지를 표명해 온 연내 타결 목표도 보기 좋게 달성했다. 28일 타결, 한해가 저물기 단 3일 남은 시점이었으니,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다시,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 했을까.
예상하지 못했다면 실책이고, 예상했다면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 수 있는 해결방안'을 강조해 온 정부 스스로 원칙을 져 버린 것이다. 원칙 혹은 이상과, 결과로 다가올 현실 사이 간극을 메워줄 만한 조치들은 없었다. 할머니들의 마음을 돌리고 후폭풍을 잠재울 '창조적 대안'은 등장할 것인가. 지켜보는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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