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아들을 가슴에 묻고, 거친 세상 향해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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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단의 책임자가 되면서 김미숙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도 구미에서 서울로 옮겼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갈 생각도 아예 없다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이제는 더 이상 유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상근 노동운동가로 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 영등포구 재단 사무실에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주택가 골목길 연립주택 2층에 자리잡은 재단 사무실은 20평 남짓 했다. 방 세 개를 개조해 회의실, 사무실 공간으로 쓰는데 소박했다. 이 사람의 한 달 활동비는 190만 원, 이사장이지만 재단의 나머지 상근자 2명과 똑같은 보수를 받는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자신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산재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도 이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4. 이쯤에서 멈추지 않을까 싶은 지점에서 이 사람은 오히려 한 발 더 치고 나왔다. 재단을 만들고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난해 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의 최일선으로 나섰다. 이름만 올리고 투쟁 현장에 몇 번 얼굴 비치는 것으로도 족할 법도 한데 이 사람은 국회 앞 투쟁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자리를 지키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단식 투쟁으로 싸움의 열기와 강도를 끌어올렸다. 이런 일은 누가 권하고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단식도 원칙대로 했다. 29일 동안 물과 소금, 효소만을 먹으면서 버텄다. 김미숙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지독하다는 말이 나왔다. '저도 다이어트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굶으면 잘 안되더라구요. 그때 제가 느낀 것은 절박하면 이것도 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절박하면…'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는 모습을 보니 단식하는 사람 치고는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김태년 원내대표한테 다른 건 다 혼자 하면서 이건 왜 야당과 협의하겠다고 하느냐고 소리 질렀잖아요? '정말 저는 이해가 안 가죠. 이게 진짜 민중을 살리기 위한 가장 큰 사안인데 그걸 협상한다는 게 정말 이해가 안 됐고, 여당만으로도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는데 결국은 자기들의 당리당략과 재계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거잖아요.'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진보 정당 대표가 있어야 될 자리를 이 사람이 차지한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용균이 투쟁을 하면서 사람들이 동조를 해주었고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제가 법안 제정 운동의 대표자로 나서게 된 거고, 제 생각이 크게 불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같이 힘을 모을 수 있었을 겁니다. 다 같이 한 거고 이런 큰일 하는데 누구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 사람 존재 자체가 힘이다. 스스로 그 자리에 서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남의 힘에 떠밀려 그 자리에 가는 법이란 없다. 이런 것이 권력의지라면 이 사람의 권력 의지는 차고 넘친다. 본인에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국무총리가 찾고 여야 의원들이 쩔쩔매고 청와대 높은 분들이 와서 고개를 조아리고 예전 같으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기업 사람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한다. 자신의 말이 방송과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거리와 집회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눈길들이 늘어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들으려는 언론이 줄을 선다. 이게 힘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내 말에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조금이라도 불순하고 가식적인 말을 하면 금방 알아 차릴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 하나도 안 섞고 그냥 있는 대로 표현을 해요. 용균이가 요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공감대가 컸다고 봐요. 제 말에 힘이 생긴 것은 결국 그 때문인 거죠.' 그렇지만 이 힘이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죽은 아들을 돌아올 수 있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5. 이 사람의 등장과 투쟁은 어디선가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1980년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등이 이 사람의 모습과 겹쳐 보이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과 아예 판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식이 못다 한 일을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부모들의 모습은 물론 숭고하지만 본질은 슬픔이고 애통이고 비극이다. 그런 비극의 주인공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가 나아진 증표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김미숙의 존재가 우리 사회가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퇴행으로 보일 것이다. 무엇이 평범한 삶을 살아온 50대 여성을 불과 2년여 만에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로 변신시켰을까. 아들의 죽음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들 잃은 어머니가 이 사람만은 아니었고 아들 잃었다고 모든 어머니가 이 사람처럼 변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지난 50년 넘는 세월 단 하루도 허투루 산 적이 없다지만 김미숙이라는 이름으로 산 시간, 자기만을 위해 산 시간은 많지 않았다. 큰딸 같은 차녀로 살았고 가장의 역할까지 짊어진 주부, 엄마로 살았다. 밖에 나가면 여공, 사원으로 불리는 존재였다. 화려한 무대에 오른 적도 없고 사람을 손짓 하나로 부려본 적 없고, 돈 걱정 없이 사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산 기억이 많지 않다. 김미숙에게 지워진 것은 늘 짐이었다. 가난한 부모를 도와야 하는 짐, 병든 남편을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하는 짐, 이제는 아들을 대신해 일하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만큼은 없는 세상을 만드는 짐이 이 사람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쉰이 넘어서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을 찾은 듯하다. 아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일이다. 내가 잘난 부모였다면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평생 지우기 힘들 테지만 애써 이렇게 자신을 스스로 위로한다. '내가 좀 더 잘난 부모가 되었더라면, 좀 더 재산이 많았더라면 우리 용균이 제대로 교육시켜서 그런 회사 못 들어가게 했을 텐데 하는 자책감은 있지만 그것이 용균이를 죽음으로 가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말을 할 때 이 사람은 여전히 '용균이 엄마'다. 거기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자신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그리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고 이소선 여사와 비교하는 것도 기꺼워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인가요. '그건 본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지 제 의사 하고는 상관없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만큼 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자신이 혹시나 다른 사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촉수를 날카롭게 세우고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용균이 엄마'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할 거라는 의지가 강렬했는데 '노동운동가 김미숙'으로 자신이 해야 될 일에 대해서는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자임하고 나섰을 때 이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정해진 셈이다. 엄동설한에 목숨을 거는 단식을 불사하며 싸우는 모습은 '용균이 엄마'를 넘어 '노동운동가 김미숙'으로 변신 중이라는 증거였다. 6. 이 사람의 말에는 단박에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다. 이런 것은 배움이 많다거나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만난 이후에 좋은 대통령 만나 다행이고 진심 느껴진다는 말씀 하신 적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 변함없습니까. '대통령도 정치인이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보여주기 식으로 언론을 몰고 가는 거 아닌가… 자기네들 이미지 관리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는 '대통령이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자기네들 입지만 생각하고 한 거구나…' 웃기면 웃는 거고 슬프면 슬픈 거지 특별히 유가족이라고 해서 어떤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웃음이 적었다. 3시간 이야기하는데 한 번도 파안대소하지 않았다. 활짝 웃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농담을 던져도 옅은 미소만 지었다. 많이 웃고 지낸 날은 용균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아직도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이 사람 가슴에서 아물지 않았다는 뜻이다. 얼마 전 한 방송에 출연했을 때 평소와는 달리 화장을 곱게 했다. 그 모습에 자기 스스로 어색해하는...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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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호(논설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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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0 |
생활 ·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