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화가 아들 흰 머리 조수 아빠
“아버지 저 이 물감 좀 짜주세요” “아버지 붓 손잡이 좀 바꿔주실래요?”
“붓에 물감이 너무 많이 묻어서… 아버지 붓 한번만 좀 닦아주세요.”
장성한 아들의 조수 역할을 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
사실 부탁하는 경식 씨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사람인데 힘들죠. 그래서 일부러 한 번에 몰아서 부탁했었어요.” - 임경식 / 구필 화가
20살 사고 이후 목 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된 경식 씨. 그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구필 화가입니다
‘옷 갈아입기, 식사, 이젤 위치 조정, 물 뜨기, 붓 골라 놓기…’ 경식 씨의 삶에서 아버지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밤에 주무시다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을 만큼 나이가 많이 들었거든요. 저를 돌보기엔 힘에 부치죠.” - 임경식 / 구필 화가
“음악 좀 틀어줘.” “이젤* 스위치 좀 켜줘.” 현재 경식 씨의 옆을 지키는 건 사회복지사, 그리고 작은 인공지능 스피커입니다.
지체장애인을 위해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 스피커는 경식 씨의 말 한마디로 작업실의 불도 켜주고 이젤의 높낮이도 바꿔줍니다.
“밤늦게 잠이 안 와서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난감했었죠. 아버지를 깨울 수 없잖아요. 그럴 때 스피커가 유용해요.” - 임경식 / 구필 화가
따뜻한 어느 봄날, 경식 씨는 그의 조수 덕분에 혼자 밖을 나섭니다.
“교통약자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지상 엘리베이터는 2번, 3번 출입구 근처에 있고 현재 정상운행 중입니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었던 경식 씨.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 경식 씨는 눈 안에 담아온 벚꽃을 화구로 한 땀 한 땀 그립니다. 아버지를 위한 선물입니다.
올해 경식 씨 마흔둘, 아버지는 여든. 경식 씨는 매 순간 독립을 생각합니다.
“저에게 독립이란 먹고 자고, 그런 일상적인 행동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 그냥 ‘일상’이 독립이에요. 그런 일상을 꿈꿔요.” - 임경식 / 구필 화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 그런 환경을 만드는 기술. 우리가 계속 고민해야 할 당연한 숙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