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보다가 피 보는 사람?
나는 요즘 큰 고민이 있다. 연애? 일? 아니, 그건 바로 변비다. ‘변비가 고민일 정도야?’ 이렇게 가볍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보통 직장인의 변비가 그냥 커피라면 내가 겪는 변비는 감히 T.O.P라고 말할 수 있다. 종종 피도 보기 때문이다.
최근 직장 동료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가 소름 끼치는 충고까지 들었다. “자꾸 피 나는 거 치질이나 치루 초기 증상일 수 있어. 병원 꼭 가봐.” - 리따 / 스브스뉴스 PD
‘치질’, ‘치루’ 입사 이래 가장 오싹한 순간이었다. 곧바로 ‘항문 전문병원’을 검색했다.
그런데 검색 결과로 나오는 몇몇 병원의 이름이 조금 이상했다.
‘항’문이 아니라 ‘학’문 또는 ‘창’문, 항‘문’이 아니라 항‘분’. 병원 홈페이지를 눌러보니 항문 질환을 진료하는 병원이 분명한데…
그저 병원들의 재기발랄함인 걸까? 조금 알아보니 꼼수가 숨겨져 있었다.
병원 이름을 지을 때 의료법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문제는 바로 ‘특정 질환명’·‘신체 부위명’을 넣으면 안 된다는 것. “환자는 병원에 그 질환의 전문의가 있는지, 없는지 보통 병원 이름으로 판단합니다.” - 신현두 /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병원 이름에 특정 질환명·신체 부위명이 있으면 보통 그 분야의 전문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론 아닌 경우가 적지 않아요. 환자들이 그렇게 오인하지 않게 법으로 금지하는 거죠.” - 신현두 /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병원 이름에 이렇게 ‘항문’을 똑바로 넣으면 불법이다. 그래서 ‘학문 외과’, ‘향문 외과’ 같은 병원 이름이 나오는 것.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문병원만 특정 질환명·신체 부위명을 수식어에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그런데 이런 전문병원은 전국에 108개밖에 안 된다. 지난해에는 111개였는데 올해는 더 줄어들었다.
매년 심사를 거쳐 지정하는데, 올해 그 심사 기준이 조금 더 까다로워져 그런 것 같다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가면 전문병원을 분야별로 볼 수 있는데 내가 찾는 대장항문뿐 아니라 외과, 이비인후과 등 흔히 찾는 질환명·진료과목 20가지로 정리돼 있다.
나처럼 이렇게 무턱대고 ‘항문 전문병원’을 검색하는 사람이라면 정부에서 지정한 전문병원을 가는 게 나을 수도.
물론, 난 이미 홈페이지에서 ‘대장항문’ 전문으로 지정된 병원을 알아봤다. 곧 오싹함을 해소하러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