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도 레즈비언 해요?
거울 앞에 선 한 사람. 꼼꼼하게 면도를 합니다.
그는 면도를 끝내고 방으로 가 직접 만든 속옷을 여미어 입습니다. 가슴을 가리는 속옷입니다.
셔츠로 마무리. 그는 단장을 마치고 활짝 웃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묵. 1945년생 여성 성 소수자 '바지씨'입니다. "이상하게 나는 어려서부터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사는 것 같아." -이묵
*바지씨 : 남성성의 매력을 풍기며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 성 소수자 *치마씨 : 여성성의 매력을 풍기며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 성 소수자 바지씨와 치마씨는 70∼80년대까지 여성 성 소수자들을 지칭하던 은어입니다.
"여자가 그냥 예쁘고 좋아." -이묵 이묵 씨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남자에겐 눈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여자끼리 산다' 동네 사람들은 이묵 씨를 향해 짧은 머리에 남자 옷을 입고 여자와 함께 산다며 수군거렸습니다.
"이묵 씨는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이름조차 없던 시대를 살아온 분입니다. (그의 정체성에 대해)주변에서 끊임없이 의문을 가졌었죠." -이영 감독/여성영상집단 움
하지만 이묵 씨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사랑하고 연애를 했습니다. 비공식 결혼도 여러번 했습니다.
"성 소수자 후배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영 감독/여성영상집단 움 2009년 4월, 그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에 담겠다고 찾아온 이영 씨의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에서 이전 세대의 레즈비언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묵 씨는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성 소수자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이영 감독/여성영상집단 움
그는 화면 안과 밖에서 바지씨로서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차피 이 길을 걸어야 하는데, 뒤에서 쑥덕쑥덕 하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자신있게 살란 말이야. 후배들(성 소수자들)이 자신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묵
최근 퀴어퍼레이드가 벌써 18회째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윗세대 바지씨가 현세대 LGBTQ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는 손 잡고 다니면 쑥덕대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상관없잖아. 많이 좋아졌지만, 앞으로 더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어." -이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