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내 미스트 받어♥
밭을 메던 할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막 흔들어!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으면서 잎을 흔들어보라고 시킵니다.
심지어, 땀이 안 난다며 할머니 얼굴에 물까지 뿜습니다.
됐다, 여보! 더우니까 돈 있으면 아이스크림 사먹어 사진 찍기를 마친 할아버지는 당황스러운 한마디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할아버지는 사진작가입니다. 사진 공모전 최다 수상자로 세계 기네스북에 이름까지 올린 작가입니다.
“사진 찍을 땐 밥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플 정도로 참 기분이 좋아요!” ?임일태 씨(75세)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교감 승진을 앞두고 사직서를 내고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사진은 작품, 명예입니다." 할아버지의 사진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공모전 출품을 위해 들인 돈만 2억 원이 넘을 정도입니다.
“남편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준 건 없어요. 심지어 웨딩 사진도 없어요” -이혜자 씨 (69세) 할머니는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사진에만 빠져있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차를 닦고, 아내가 마실 두유 하고 물 하고 데워다가 머리맡에 놔줘요.” -임일태 씨 (75세) 주로 집에 있는 할아버지는 아내의 출근 준비를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세수할 물을 온도에 맞춰 준비하고 , 매일 아침 깨끗하게 구두를 닦습니다. 그리고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합니다.
“사진을 작품으로만 생각했어요. 남들은 추억 사진 위주로 찍는데 전 작품 위주로만 찍었어요. 가족사진은 신경을 못 썼어요” -임일태 씨 (75세)
할아버지도 집 안 가득 걸려 있는 사진들 중에 가족사진이 하나 없어서 항상 미안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용기를 내서 웨딩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곱게 차려 입고, 새신랑 새신부가 돼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손에 잡고 아내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정성을 다해 아내의 영정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작가 아내 하기를 잘했네. 이 사진 하나 갖고 44년의 한을 다 풀어 버렸어” -이혜자 씨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릅니다.
“웃어, 밑져야 본전이니께!!!” 할아버지는 오늘도 셔터를 누릅니다. 그리고 뷰파인더 안에는 할아버지의 최고의 모델인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기획 최재영, 김근아 인턴 / 그래픽 김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