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여자 3명, 압록강 철교를 건너다 잡혀 취조' - 매일신보 1922년 6월 24일
미씽 - 그 많던 여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 여자.
압록강을 건너다 일제에 잡힌 20대 여성. 그녀는 품 속에 무언갈 감추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흰 종이지만 불에 대면 글씨가 살아나는 일종의 암호 편지였다." - 『장강일기』 中
정정화, 임시정부 최초의 여성 특파원. 그녀는 독립운동자금을 구하기 위해 압록강을 오갔다.
"진흙과 자갈이 섞인 강변을 따라 맨발로 삼십 리 길을 올라가야 했다. 여간 벅차고 힘든 길이 아니었다." - 『장강일기』 中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기만 6번. 당시 그녀는 고작 21살이었다.
"좋게 말하면 대담하고, 잘 봐준다 해도 당돌하기 그지없는 내 기질이 또 한 번 살아나기 시작했다." - 『장강일기』
1919년,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해로 망명을 가면서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인가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거센 욕구가 일어났던 것이다." - 『장강일기』 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이 된 그녀는 27년 가까이 임시정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 백범 김구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의 뒷바라지부터,
특파원 활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기 시작한 그녀는 한국혁명여성동맹, 대한애국부인회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41년에는 임시정부 산하의 '3.1 유치원'에서 중국에 살고 있던 동포 자녀들에게 한글, 역사 등을 가르치며 교육에 힘썼는데...
"모국의 산과 들, 모국의 마음을 얘기로만 듣고 자라난 아이들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독립된 그들의 조국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내 나라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 『장강일기』 中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내 나라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 『장강일기』 中
임시정부의 '일원'이자 '특파원'으로, 27년의 힘든 길을 함께 한 대한의 여성 정정화.
"어린 아이가 집 밖에 나가 놀 때도 어머니는 늘 집 안에 계시듯 조국은, 잃어버린 조국은 늘 그렇게 내 마음속에 있었다." -『녹두꽃』中 당신은 그녀를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