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는 오해죠
공포? 공포였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거요.
그런 제가 무턱대고 인사동에 나온 건 2015년 11월이었어요. 구입한 지 불과 며칠 안 된 앰프와 마이크를 캐리어에 담아 왔죠.
터덜터덜 걸어가 길 한 귀퉁이에 앉았어요. MR을 틀고 마이크를 들고는 두려움에 두 눈은 꼭 감았습니다.
그렇게 노래 몇 곡이 끝나고 바짝 긴장한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저를 바라보며 아낌없이 손뼉 치는 수많은 시민, 그리고 그들이 수북하게 놓고 간 팁까지. 이때 생각했죠. ‘아, 버스킹으로도 삶을 꾸릴 수 있겠구나’ 하고요.
제가 늦은 나이에 버스킹을 시작한 건 ‘후회’ 때문이에요. 2012년,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에 두 차례 출연해 아쉬움만 남기고 떨어졌어요.
2015년 3월 ‘아시아 갓 탤런트’에서는 존경하는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 앞에서 노래 반주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떨었어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죠.
결국,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튜브를 보며 노래공부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일과 병행하다 보니 진도가 더뎌 애가 탔죠.
그래서 얼마 뒤에는 ‘섬유공예가’라는 30년 된 직업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 구석에 작은 고시원을 빌렸죠.
원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카페나 바에서 일하려는 생각이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인사동에 나왔는데, 버스킹 매력에 빠져 이렇게 살게 됐네요.
사실 섬유공예가로 화학 염료를 다루면서 천식도 생기고, 호흡기도 많이 약해졌어요. 노래를 시작한 나이도 50대로 매우 늦었고요.
그래도 전혀 제 과거를 원망하거나 노래를 더 일찍 시작할 걸 하고 아쉬워하진 않아요. 삶에서 겪은 좌절과 극복의 경험들이 노래를 해석하는 역량이 됐거든요.
SNS에서 제게 ‘80대’, ‘할머니’라고 부른다면서요? 저는 아직 58살인데 말이죠. 어휴∼ 그래도 전 시민들이 노래를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한번은 중년 남성분께서 노래가 끝난 뒤 오셔서 눈물 고인 눈으로 제게 악수를 청하는데 이런 버스커라면 가수 부럽지 않다 싶어요.
제 노래에 춤을 추는 분들도 있고, 요즘엔 과분하게 ‘팬’까지 생겼어요. 오늘은 어떤 분을 만날까 하는 기대에 매일 길을 나선답니다.
최근에는 몸이 약해져 따뜻한 부산으로 옮겼어요. 주말 저녁 광복로에서 저의 소소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꿈꾸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 <이 기사는 한복희 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1인칭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