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을 ‘재수 전문가’라 소개했습니다.
문재인이 고등학생이던 196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분노한 문재인은 학교에서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느라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대학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했습니다. 악착같이 다시 공부해 1972년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습니다.
대학생이 된 문재인은 친구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유신반대 시위 도중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문재인은 사법시험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1979년 사법시험에 응시해 고배를 마셨고 그 다음 해, 죽도록 공부해 다시 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두환 정권은 5.17 계엄확대 조치로 과거 학생운동 전력자를 마구 잡아 가뒀고 문재인도 난데없이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때 사법시험 2차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사법연수원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차석으로 수료해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이대로라면 판사 임용까지 무난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습니다. 성적은 좋았지만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는 이번엔 재수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추구했던 이념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그는 또다시 재수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선 대선 실패 이유를 자신의 ‘실력부족’ 탓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시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시민들 속에서 답을 찾은 지 4년 반. 인생 3번째 재수에서 또다시 성공을 거두고 19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