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죽인 나라에 세워진 작은 동상
수류탄에 몸이 찢긴 어머니 품 안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후 6개월의 아기.
어머니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과 화약이 눈에 들어가 아기는 그날 눈이 멀었습니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42년이 훌쩍 지나 눈먼 아기는 중년이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았습니다. 그날 어머니를 죽인 건 한국군이었다는 것을.
한베평화재단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지였던 베트남 5개성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기록으로 확인된 것만 9000여 명*.
한국군은 도안응이아 씨가 살던 마을에서만 그의 어머니를 포함해 430명의 민간인들을 사살한 것으로 한베평화재단은 추정했습니다.
현지의 위령비엔 ‘보자인’(Vo Danh)이라는 이름이 유독 많이 보입니다. ? 보자인은 ‘무명’, 즉 이름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름도 채 갖지 못한 아기들이 무참히 죽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석미화 씨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지난 26일, 제주 강정마을에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한 데 모인 가운데 작은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동상 이름은 ‘베트남 피에타’. ? 동상의 어머니가 품은 아이의 모델이 바로 ‘도안응이아 씨’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김운성 부부가 조각한 작품입니다.
베트남 피에타 앞에서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전했습니다.
원래 이 동상은 베트남에 먼저 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좀처럼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베트남 고위 인사에 따르면 한국대사관 대표가… (중략)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해 베트남 피에타 설치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합니다.” - ‘베트남 피에타’ 제막식 경과보고 中
도안응이아 씨 등 피해 민간인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 정부는 진상조사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을 제대로 돌아볼 기회가 우리에겐 없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우리의 거울로 삼고 이제라도 ‘평화’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한국 때문에 가족도 세상의 빛도 모두 잃었던 도안응이아 씨. ? 그는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기타를 연주해줍니다. “제 마음을 알아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 도안응이아 씨
오늘(4월 30일)은 42번째 ‘베트남전 종전 기념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