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살 김옥례, 나 한 번 해볼텐게!
“할머니, 도서관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한글 배우러 오신 건가요?” “아뇨, 나 시 배우러 왔어요.” 내가 처음 목포 공공도서관을 찾은 날이었어요.
‘다 늙은 할머니가 무슨 시를 배우나?’ 생각했겠죠. 수업 첫날, 교실에 들어서니 젊은 새댁들만 있고 팔순 노파는 나뿐이더군요.
팔십 넘은 할머니가 무슨 시냐고요? 내 평생 꿈이 시인이 되는 거였거든요. 12살 때, 친척 오빠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을 읽어줬는데 너무 좋았어요.
결혼하고 애 낳고 살림을 하면서도 늘 시를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너무 바빠 종이에 적을 새도 없어 모래사장에 손가락으로 쓰기도 했어요.
내 친구 재봉틀 낮에도 달달달 밤에도 달달달 쉴새 없이 달달달 너는 나의 친구 너는 나의 힘이었고 너는 나의 생명줄 - 시 ‘재봉틀’ 中 다리미, 재봉틀, 코스모스... 내 주변 모든 것들이 소재였어요.
미싱질 해서 칠 남매 다 키우고 팔순 노파가 돼서야 다시 ‘시’가 생각나 도서관을 찾은 거예요. 젊은 새댁들 사이 혼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는 더 노력해야만 했어요.
“할머니, 무슨 일인가 해서 와봤어요.” - 이대흠 시인 통학이 너무 힘들어 며칠 수업에 못 나갔는데 걱정됐는지 시 선생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셨어요.
선생님이 쉬는 동안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라며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를 주고 갔어요. 너무 고마웠죠. 그래서 작정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문득 먼저 간 딸이 떠올랐어요. 보고 싶다 보고 싶어 공부공부 엄마 엄매 몸 나으면 대학 졸업 꼭 할 텡께 그리 알어 그 소리가 귀에 쨍쨍 꿈에라도 오려므나 이 어미의 한이란다 - 시 ‘꿈의 얼굴’ 中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내 시를 보고 진솔함이 있다며 시집을 내보자고 하더군요. 처음엔 손사래를 쳤지만 용기를 냈어요. “에라 모르겠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은께!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나는 80살에 시인 김옥례가 됐어요. 내 꿈을 이룬 거죠.
이 시집은 나만의 것이 아니에요. 날 도와줬던 공공 도서관 새댁들, 날 응원해준 이대흠 선생님, 그리고 출판비를 모금해주신 많은 분 거예요. 여든 살 김옥례! 앞으로 열심히 써볼텐게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