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도 18개를 만든 이유
지하철 역만 가면 등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힘들지?” 11살 지민이는 엄마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지민이는 어릴 적 14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와서 휠체어를 탑니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데만무려 40분이나 걸렸어요" 외출을 좋아하는 지민이. 하지만 휠체어리프트나 엘리베이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론 한참 돌아가기도 합니다.
휠체어리프트가 고장 났다고 다른 노선을 이용해 2번 갈아타라고 안내한 역도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어 역무실에 전화했는데...
‘계단 위에 계시면 서울메트로에.. 아래에 계시면 도시철도공사에 문의하세요.’ 도와줄 생각은커녕 책임소재를 따지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민이. 문득 앞으로가 걱정됐습니다. ‘만약 나중에.. 내가 없다면.. 혼자 지하철을 타야 한다면.. 그땐 어떡하지?’
제가 없어도 지민이를 자유롭게 다니게 하고 싶었습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게 장애인 환승 지도였습니다.
환승역에서 직접 휠체어를 타고 가보며 이동경로와 소요시간을 기록해 지도로 만드는 겁니다.
지도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지민이에게 한번 물어봤습니다. “우리 그만할까?”
“내가 안 하면, 남도 안 하고, 그러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잖아.” 잠시 생각하다 지민이가 내뱉은 한 마디는 제게 일어날 힘을 줬습니다.
“저희 학생들이 도울 수 있도록 해볼게요.” 그러던 중 다행히 계원예대 광고브랜드디자인학과 교수님과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이 휠체어를 타고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주면서 지도 제작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렇게 18개 환승역의 휠체어 경로를 담은 지도가 책자와 앱으로 만들어줬습니다.
‘표지판이 잘 안보였어요.’ ‘경사로가 너무 급했어요.’ 제작 과정에서 휠체어를 타고 환승해 본 학생들은 불편한 점을 적잖이 발견했습니다.
그때마다 지하철공사 측에 알렸고, 덕분에 표지판 높이를 낮추거나 경사로를 완만하게 하는 등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지도 덕분에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게 된 지민이. 그런데 가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런 지민이 얘기에 가슴이 미어지지만 엄마는 말합니다. “장애는 미안한 게 아냐...”
지민이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세상, 자신이 만든 지도가 무의미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게 엄마 홍윤희 씨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