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못 사는 콘돔
서울 길거리에 수상한 자판기가 있습니다. 성인은 이용할 수 없고, ‘청소년’만 이용 가능합니다.
돈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나오는 건 ‘콘돔 2개’. 그런데, 이 자판기 사용 금액은 단돈 100원입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값에 콘돔을 파는 자판기. 피임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쉽게 가져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자판기를 만든 회사는 건강하고 안전한 성문화를 추구하는 소셜 벤처 ‘이브(EVE)’입니다. “자판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은 서울시립 청소년건강센터 ‘나는 봄’에 기부됩니다.” - 박진아 씨 (EVE 대표)
그런데 자판기를 설치하자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런 걸 왜 굳이 길거리에 갖다 놨냐.” “청소년들의 성관계를 너무 조장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10대들의 성(性) 문제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가게에서 콘돔을 사기가 어려워 피임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친구와 방금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콘돔 대신에 비닐봉지를 싸서 했거든요. 안심해도 될지… 너무 걱정돼서 미치겠어요. 도와주세요.” - 15살 청소년 (네이버 지식인)
일반 콘돔은 청소년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편의점과 웹사이트에선 아직도 잘못 알고 신분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이 싫어 콘돔 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성관계를 안전하게 하려고 해도 ‘어린애들이 벌써부터’라는 식으로 더럽다고 보는 시선이 많아서 콘돔 구입이 매우 힘들어요.” - 18살 청소년 정 00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콘돔의 사용법과 안전성을 성교육 시간에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임이나, 성관계에 대한 논의를 피하죠. 10대 때는 ‘하면 안 돼’라고 가르치다가 막상 성인이 되면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요. 이건 방임이에요.” - 박진아 씨 (EVE 대표)
'성관계는 안 된다'고 막기만 하는 것보다 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이끄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성관계를 시작한 평균 연령은 13세. 피임 실천율은 48.7%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일부 학생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있습니다. * 자료출처: 2017년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팀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박 대표는 어른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판기를 보면, 청소년도 당당하게 콘돔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성인들이 깨닫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