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너무 다른 우리
요즘 가족 대화에서 꺼냈다 하면 얼굴 붉히게 되는 주제. 이 가족은 이미 꺼내버렸습니다.
"대통령? 국민을 다스리는 사람이지." 엄마 라종임 씨는 탄핵을 반대합니다.
"아니지.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대신 일할 뿐이지." 이에 맞서는 딸. 딸은 탄핵을 찬성합니다.
엄마와 딸이 팽팽히 맞서자 어느새 집에는 냉랭함이 가득합니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는거 아냐?" 엄마는 박 전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국민을 위해 일을 안 하고 사리사욕을 챙겼잖아." 딸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며 엄마의 말을 받아칩니다.
딸과 한바탕하고 나니 엄마는 뾰로통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전쟁 후에 찢어지게 가난했던 엄마는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아직 잊지 못합니다.
엄마와 딸의 희비를 나눌 운명의 시간 3월 11일 11시 21분이 됐습니다.
탄핵 선고가 나자 딸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침통해졌습니다.
딸은 엄마를 찾아가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사람이 못 돼서가 아니라 법을 어겨서 탄핵된 거래."
결과에 수긍한다는 뜻인지 엄마는 딸을 위해 잔치국수를 끓여줍니다. 딸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서로 생각이 달라 얼굴을 붉히다가도 약속한 절차와 결정을 존중하고, 격려와 위로를 나눕니다.
그리고는 한솥밥을 먹습니다. 이 지붕 아래 이 가족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민주주의 모습이 아닐까요? 기획 하대석, 우탁우 인턴 / 그래픽 김태화